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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로 사랑하여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8 조회수536 추천수9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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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3,31-33ㄱ.34-35




서로 사랑 하여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에페소서 5장2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 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 놓으신 주님께서는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4-35).

 

왜 새 계명일까요?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19,18). 그런데 그 중심을 보면 ‘내 중심’입니다. ‘너 자신처럼’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 중심’으로 사랑을 시작 하였다면, 이제부터는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 예수님의 시대에 옛 계명이 다시 주어졌으니 새 계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새 시대가 주어졌는데 새롭게 살아가라. 알고 있는 것이 앎 자체가 아니라 아는 바를 이웃을 향한 구체적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서로 사랑하여라.” 는 말씀 중에 ‘것처럼’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사랑한 그 사랑으로’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은 결국 희생을 동반한 사랑입니다. 젊은이들의 혼인을 준비하면서 사랑이 무엇이냐? 고 묻게 됩니다. 그 대답은 다양하지만 ‘주는 것이다. 베푸는 것이다.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 싶은 것, 주어도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라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베품’에 대한 대답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사랑은 일방통행일가요? 쌍방통행일까요? 하면 대부분은 “상방통행”이라고 답합니다. 모순되는 대답을 합니다. 이 답에는‘내가 이만큼 했으면 너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갈려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자체가 보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일방통행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거룩해서, 큰 공로를 세워서 사랑하시고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의 잘못, 죄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십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바로 그분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부족함 때문에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13절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는 필요충분조건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많은 지식, 교양이 있고, 거룩한 체험을 하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제자가 됩니다. 결국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랑의 휘장을 달고 다녀야 합니다.

 

익명의 성인은“우리가 사랑하는 성인들과 함께 천국에서 사는 것, 그것은 가장 순수한 영광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성인들과 함께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매일 같이 백색순교를 요구하는 인내의 삶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웃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천상을 갈망하는 만큼 이 세상에서 인내를 가지고 사랑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의 눈이 맑아져서 하느님을 뵈올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아우구스티누스). 사랑하는 곳에 하늘의 문은 이미 지상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할 때, 내 삶이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당에는 많은 순례객이 오십니다. 혼자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성당에 와도 아무도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이 없다면 성당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 어떤 형제는 성당에 열심히 나왔는데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없어서 서먹서먹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를 가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는데 영성체를 할 수 없어서 다시 돌아왔답니다. 우리는 평상시에 대부모와 대자녀, 같은 구역, 같은 모임 등 끼리끼리 어울릴 때가 많습니다. 새로운 사람한테는 무관심한 채 잘 아는 사람과 지내는 것도 좋겠지만 주위에 혼자 있는 사람은 없는지 둘러보고 참여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낯선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5,46). 아직 우리가 그들 중 많은 이들을 만나보지 못했을 뿐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하지 말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합니다’, ‘환영합니다’ 인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초대 신부이신 임가밀로 신부님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사제이십니다. 24세에 프랑스에서 사제품을 받고 곧바로 한국에 오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당신이 만날 모든 이를 향한 사랑이 열려있었습니다. 그리고 51년1개월의 사목생활을 마치셨습니다. 신부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성당에 모셔져있습니다. 사랑했다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넉넉한 사랑에 기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노래는 그 노래가 불리어질 때까지 노래가 아니다. 종은 그 소리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요, 사랑은 사랑이 나누어질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송봉모). 라고 했습니다. 입술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랑을 갈망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코린13,1). 우리의 스승 예수님께서 사랑의 길을 걸으셨으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치매의 마지막 단계의 증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치매의 마지막 단계의 증상은 ‘부부사이’ 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이랍니다. 자기 남편이, 자기 아내가 다른 사람인줄 알고 좋아진답니다. 서로 끝까지 사랑 안에, 주님 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항구하게 주님 안에 머물 수 있음이 행복입니다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

 


옛날에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혼자 속으로만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도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하는지 몰랐고, 거북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토끼에게는 한 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북이가 자기의 느린 걸음을 너무 자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토끼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 “거북아, 나랑 달리기해 보지 않을래?” 그날따라 거북이는 투지가 생겼습니다. 질 때는 지더라도 토끼와 같이 달려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 한 번 붙어보자!”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토끼는 저만치 앞서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뒤따라오는 거북이만 생각했습니다. “포기하면 어떡하지? 중간쯤 가서 기다려주자.” 그런데 그냥 눈을 뜨고 거북이를 쳐다보면서 기다린다면 거북이가 자존심이 상할까 봐 토끼는 길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북이가 와서 자기를 깨워주고 같이 나란히 언덕으로 올라가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토끼의 착각이었습니다. 거북이는 토끼 옆을 지나가면서도 깨우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 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거북이가 경기에서 이겼습니다.


경기 후에 동네 동물 식구들과 후세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는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는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어떤 이는 ‘눈물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티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고 소리 없는 헌신이 사랑이고 양보하는 것이 사랑이며 사랑하는 대상이 높여지고 내가 무너지기를 기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수고로움이 없습니다. 만일 수고를 느낀다면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탓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사랑에 불타는 영혼은 조금도 피로하지 않고 또 남을 피로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여러분은 “희생당할 때까지, 상처 입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까지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마더 데레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서로의 사랑을 키워가는 가운데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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