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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구원을 이루시는 예수님평화 [암탉과 병아리] 21,8의 비밀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9 조회수384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 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나는 너희와 더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요한 14,27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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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셔서 하늘로 다시 가십니다.아버지께로부터 오시어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십니다.당신의 제자들과 이별을 준비하십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아버지에게서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남겨 주시고 가신다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만나 함께 있다가 죽음으로 헤어질 때,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는 다시 만날 것이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가기 전에 꼭 남겨 주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것들을 남기지 않으시고, 당신의 성령님과 당신의 평화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남겨진 예수님의 제자들과 어린양들(양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육적인 것들이 아닙니다.연약한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이들을 곁에서 항상 돌보아 주실 수 있는 변함없으신 성령과 평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구제가 아닌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구제자가 아니라 영적인 구원자이셨습니다.육의 구제가 아니라 영의 구원이셨던 것입니다.물론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구제를 아예 무시하신 처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근거해 볼 때 그러한 가르침은 결코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한층 더 나아가 참된 생명을 위한 영원하신 아버지의 하늘 나라에 대한 희망입니다. 육적인 것들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지만 영적인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육적인 것들에 참된 생명이 없고 영적인 것들에 참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로마 8, 1 참조)님을 보내어 주시고 세상에서 구제가 참으로 되어지는 '예수님의 평화'를 남겨 주신다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만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는 게 아닌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늘 나라를 간절하게 희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땅에서는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평화'입니다. 인간의 악에 의한 고통에서 해방되어지는 예수님의 평화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물질적이고 육적인 구제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영혼적인 구원까지가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예수님의 평화인 것입니다.

이 평화를 이루시기 위한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 속에 뿌리내려진 모든 죄스런 배경들에 대한 악의 고통에서 인간을 보호하고자 하심이셨습니다. 구원이란 악에서 해방되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하셨습니다.(복자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 교서 참조) 그러나 악에 붙잡힌 사람과 공동체는 구원을 이루는 '예수님의 평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이 공동체 안에, 자신 속에 담겨져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 자신을 내어 주는 하느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마태 23, 37  39) ]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하십니다. 하지만 [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신(오는)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게시글;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다 참조) 이같은 사랑을 "복되시어라" 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사랑으로 꽃피어야 할 집은 '그 사랑'이 없어 버려져서 황폐해진다고 할 것입니다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설쳐댄다고 할 것입니다.  물적이고 육적인 감흥에만 맛들여져서 '예수님의 평화'가 샘처럼 솟아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만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위하여)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정녕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위대하시어 예수님(몸)하고는 이별해야 하지만 언제나 우리와 늘 함께 하실 수 있는 성령님을 보내어 주십니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하십니다. 

죄악의 우두머리가 예수님을 (사랑을) 십자가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죄악에 쌓인 육적인 공동체와 각 사람은 그런 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에게 그리고 참된 예수님의 공동체 안에 남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적 고통이 남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십자가 죽음을 담대하게 실행한다는 것을,  '세상의 죄악들'은 알아야 합니다.십자가의 사랑은 십자가 고통을 회피하여 숨어버리는 비겁한 불순명의 불충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2티모테오 1, 7 참조) ]  ......
요한묵시록 21장 8절을 참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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