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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1일(수) 聖 리카르도, 聖 에레미아 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30 조회수292 추천수1 반대(0) 신고



5월1일(수) 음 3/22

聖 리카르도, 聖 에레미아


 


리카르도 팜푸리(5.1)

성인명

리카르도 팜푸리(Richard Pampuri)
축일 5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897-1930년
같은이름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성 리카르두스 팜푸리(Richardus Pampuri, 또는 리카르도)
1897년 8월 12일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근처 트리볼지오(Trivolzio)에서 태어났다.
안젤라 팜푸리(Angela Pampuri)와 인노첸테 필리포(Innocente Filippo)
11남매 중 10번째 태어난 에르미니오(Erminio)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인근 마을에 사는 이모 집에 맡겨졌는데
7년 후인 1907년에 아버지 또한 밀라노(Milano)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인근에 있는 두 곳의 초등학교를 다녔고 밀라노로 가서 중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파비아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1915년 파비아 대학의 의대에 들어갔다.
그는 1915년과 1920년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하사관과 의무병으로 근무했다.
1921년 7월 6일 파비아 대학의 약학과와 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의사로 있던 삼촌 밑에서 3년간 의료 실습을 마친 후
밀라노의 한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들을 돌보던 그는
그리스도교 사도직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사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선교사제가 되고 싶었지만 건강 문제 때문에 단념했었다.
젊은 시절 어느 곳을 가던지 그리스도교적 덕행의 모범이었던 그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복음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고백하고
너그러움과 열정을 갖고 자선사업을 실천했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으로 하루에 한 번 이상 묵주기도를 바쳤고,
파비아 대학 가톨릭 액션 단체의 근면한 회원이었으며,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작은 형제회의 3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소년 시절부터 가톨릭 액션 단체에 참여했던 그는
실습을 위해 모리몬도(Morimondo)에 갔을 때 본당 신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음악 밴드와 가톨릭 액션 젊은이 단체를 조직하여 그 첫 번째 대표로서
성 비오 10세(Pius X)의 전구 아래 두 단체를 두었다.
그는 또한 본당의 선교 후원회의 간사를 맡기도 했고 자비를 들여
청년 모임과 농민과 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정기 피정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의사로서 유능하며 자비로운 그는 환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의술을 베푸는 데 있어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약과 돈 그리고 음식과 이불을 가져다주곤 하였다.
그의 자선사업은 모리몬도 근교의 도시 근로자들과
이웃의 손길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퍼져나갔고 다른 마을과 도시로도 확산되었다.
6년 동안 의사로 일한 그는 수도원에 입회하고자 했고,
이에 ‘거룩한 의사’를 잃을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슬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컸고
지역 신문에서까지 기사화하였다.
그는 결국 1927년 6월 22일 밀라노의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에 입회하여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자신의 의학기술을 지속하고
동시에 복음적 거룩함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는 리카르두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브레시아(Brescia)에서 지원기를 마치고
1928년 10월 24일 서원을 하였다.
서원 후 그는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브레시아의
천주의 성 요한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성 리카르두스 팜푸리 수사는
아름다운 자선을 실천하여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
수도자로서 그의 삶은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도 그랬듯이 동료, 환자, 의사,
진료 보조원, 간호사, 그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덕과 자선의 탁월한 모범이었다.
성 리카르두스 팜푸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얻은 병으로 인해
일종의 폐병을 앓고 급속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밀라노로 치료를 받으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030년 5월 1일 33살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는 ‘자신의 전문지식을 자비의 사명으로 변형시키는 방법을 아는 의사로서,
자신 안에 천주의 성 요한의 진정한 아들로서의
카리스마를 살았던 수도자로서의 기억을 남기고’ 하느님께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시신은 고향에 돌아와 묻혔으며 그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졌다.
그는 1981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는데 이날 강론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하였다.
“짧지만 열정적인 삶을 산 리카르두스 팜푸리 수사는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자극이 되는데 특히 젊은이와 의사, 수도자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
그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기쁘고 용기 있게 살도록 초대하며,
항상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따라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에 스스로를 헌신하도록 초대한다.”
그는 1989년 11월 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어머니를 잃고 이모댁에 맡겨졌던 고아,
의사로 성장한 후에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주님의 일꾼으로 성장하셨고
 

수도회에 입회한 후에도 33세의 젊은 나이에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언제나 자선을 베푸는 의사였던
성 리카르도 팜푸리 수사님이시여

님의 뒤를 따르려는 젊은이들에게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예레미야(5.1)

성인명

예레미야(Jeremiah)
축일 5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50-588년경BC
같은이름 예레미아, 예레미아스, 제레미


성 예레미야(Jeremias, 좌)와 성 이사야(Isaias, 중)와 성 다윗(David, 우)


 



성 예레미야(Jeremias)는 구약성서 예언서 중 하나인 예레미야서의 저자이다.
만일 성서에 이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는 그 종교적 본질을 아주 달리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가 마음과 인격의 종교를 주창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언자 이사야보다 1세기 뒤에,
그러니까 기원전 650년경 예루살렘 근교의 어느 사제 가문에서 출생하였다.
성서는 예레미야의 생애와 성격을 그 어느 예언자들 보다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를 3인칭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성서에 다수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6년 그러니까 요시야 왕 치세 제13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젊은 예언자로 나섰다(예레 1,2).
그는 유대왕국의 멸망이 예견되었고
드디어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초래한 비극적 시대를 살고 있었다.
요시야왕의 종교개혁과 주권회복은
유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불행하게도 609년에 그 왕이 므기토에서 전사하게 됨으로써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고대 중동의 세계는 또다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으니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612년에 함락됨으로써
바빌론제국이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집트는 유대왕국을 사주하여 바빌론의 지배에 항거하도록 하였으니,
느브갓네살은 59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하였고 주민의 일부를 유배지로 끌고 갔다.
이집트의 조종에 끝내 놀아난 유대는 또다시 바빌론 세력에 항거하였다.
587년에 바빌론 군대는 한 번 더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전을 깡그리 파괴하였고
저항세력의 지도자들을 또다시 유형지로 끌고 갔다.
예레미야는 이 어두운 시대의 역사적 비극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가 이 비극을 좌시한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는 지도자와 민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대변자로 나서서
맹렬히 설교했고 위협했으며 왕국의 몰락을 예고했던 것이다.
다윗의 왕좌를 차지했던 유대의 왕들은 예언자의 이 불칼 같은 경고를
아예 무시했으며 또 군인들은 예레미야가 패배주의를 선동한다고 비난하며
그를 박해하고 고문하며 투옥시키기까지 하였다.
드디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강기슭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시편 137)에게서 희망을 보았지만
망명하는 것을 끝내 거부하고 고국 땅 팔레스티나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그의 보호자는 바빌론인들이 임명한 총독 게달리야였다.
하지만 유태인의 한 무리가 총독을 암살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들은 바빌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레미야를 인질로 삼아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아마도 예레미야는 이집트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것 같다.
이 험난한 운명의 사나이의 드라마는 단순히 사건들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전 생애가 일종의 비극이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끝까지 그 말씀에 충실하다 보니,
예레미야는 그야말로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가 되고만 것이다.
그는 성품이 온순했고 사랑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야훼는 그에게
‘무너뜨리고 파괴하며 전복하고 없애버리는’ 사명(1,10)을 주셨다.
그의 예언은 끝없는 불행만을 예고하였다(20,8).
예레미야는 평화를 원했건만 자기 가족과 왕들과 사제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과 모든 민중을 반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예레미야는 “온 나라 안에서 싸움과 불화의 사나이로 통한 것”이다(15,10).
그가 이 같은 사명을 수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예레미야는 말씀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 될 뻔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20,9).
하느님과의 내적인 대화는 온통 고통의 외침이었다.
“무엇 때문에 나의 고통은 끝이 없나이까?” (15,18)
욥의 저주를 예고한 예레미야의 그 외침은 고백론의 절정이다.
“내가 태어난 그날은 저주받을지어다!” (20,14 이하). 하지만 이 고통은
예레미야의 영혼을 정화시켰으니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를 가능케 하였다.
우리에게 이 예언자가 그토록 귀중하고 가까운 인물로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계약을 성문화시켜 예고하기에 앞서(31,31-34)
자신이 먼저 마음의 종교와 내적인 종교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인격적 종교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심화시켰다.
하느님은 마음과 콩팥을 꿰뚫어 보시는 분(11,20)이요,
각자의 행실대로 갚아주시는 분이다(31,29-30).
하느님과의 우정은 인간의 거짓스러운 마음의 소산인 죄에 의해 끊어진다.
거짓말이 모든 죄의 뿌리란 것을 예레미야만큼이나 강조한 사람은 없다(4,4; 17,9; 18,12).
이 점에 관한 한 예레미야는 호세아 예언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율법은 그에 의해 내면화되었으며 또 하느님과의 모든 관계는
마음의 소산임을 그가 밝혔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인간의 개인적 인격에 큰 관심을 둔 것으로 보아
신명기(申命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물론 그가 신명기에 바탕을 둔 요시야왕의 개혁을 처음에는 환영하였으나
마음의 회개가 없는 제도적 개혁이 무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민중의 윤리적 종교적 삶을 변혁시키기 위하여 내적 인간의 개조 없이는
불가능함을 예레미야가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살아생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으나
죽은 뒤의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갔다.
마음의 종교에 기초를 둔 ‘새로운 계약의 사상’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유다이즘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에제키엘서와 제2 이사야서(40-55)와 시편들에서도
그의 영향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마카베오 시대의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민족의 수호자들 중의 한사람으로 꼽았다(2마카 2,1-8; 15,12-16).
예레미야는 힘과 물질보다는 영성적 가치를 더 중대시하였고
또한 영혼이 하느님과 맺은 내밀한 관계를 밝혔다 하여
이 예언자는 그리스도교의 새 계약을 준비한 인물로 통한다.
말씀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과 말씀 때문에 당한 그의 고통은
이사야서 53장의 야훼의 종의 모습을 예고하였으니,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앞질러 보여 준 것이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김예정 say




하느님과의 우정의 끈일지라도
거짓스러운 마듬에 의하여 끊어짐을 경고하면서

거짓말이 모든 죄의 뿌리임을 애써 경고하신
구약의 예언자 성 예레미야 님이시여,

절대 정직의 미덕을 통해
언제나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님을 기억하는 저희에게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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