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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01 조회수90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5월 1일 노동자 성 요셉



"Only in his hometown
and in his own house is a prophet without honor."
(Mt.13,57)



제1독서 창세 1,26─2,3
복음 마태 13,54-58

매사에 불만이 많은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항상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지요. 사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잘 나가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회사가 너무 멀다고, 직장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양에 비해서 봉급이 적다고, 심지어는 회사 근처에 식당이 형편없다는 불평까지고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하지요. 아주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한 것입니다. 사전 통보도 없었기에 그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망연자실할 뿐이었지요. 이렇게 힘들어할 때,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또 자신과 결혼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 통보까지 받았습니다.

완전히 최악의 상황, 엉망진창의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그는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왜 자신에게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주시냐고, 내가 도대체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이 다니고 있었던 직장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지를, 그리고 여자 친구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서야 이제까지 감사하며 살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그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직장을 구하고 있으며, 여자 친구도 아직 없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어머니를 더 이상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답니다.

누군가 기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확실하다.’(사무엘 슈메이커)

그렇습니다. 우리 자체를 변화시켜서 더 큰 행복의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기도이며, 주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에만 주목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불평불만을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모님의 배필이시며, 예수님의 양아버지인 노동자 요셉 성인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 성인은 상황 자체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이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했으며, 꿈의 계시만으로도 멀리 이집트까지 피신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주님의 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요셉 성인의 이러한 겸손함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평불만만을 일삼았던 우리의 교만함. 이보다 내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겸손함의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책꽂이에서 한 권의 책을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두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앙드레 지드)


성경을 읽으며 주님의 뜻과 하나되시길 바랍니다.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저한테 많은 분들이 상담을 요청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분들의 말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지요. 반대로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십니다. 이때에는 그렇게 흥미롭지가 않습니다. 자기 자랑하는 것만 같고, 왠지 가식만이 가득한 것처럼 느끼게 되어 지루함만 느낄 뿐입니다.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고통과 시련의 말도 다른 이들에게 분명 흥미로우며 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그렇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가까이 하셨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들 모두 고통과 시련 속에서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시련의 순간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순간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 은총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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