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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의원과 부산 어린이 집 [사랑과 학대의 차이]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04 조회수361 추천수1 반대(0) 신고

요셉 의원은 한달 생활비 100만원도 안 되는 < 한 분의 가난한 삶으로>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그분께서 돌아가시자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신의 일과를 끝마치고 저녁에 요셉 의원에 와서 몇백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무료로 진료한다는 뉴스를 접합니다.

부산 어린이 집은 국 공립이면서도 민간이 위탁 운영한다고 하는데 직원(삯꾼)이 학대하는 화면이 나옵니다. 민간 위탁하면서 비리가 있다는 것이며 정부에서 거의 지원이 되기 때문이다고 합니다. 기저귀 등등으로 학대했다는 뉴스를 접합니다.

자발적인 헌신으로 사랑의 봉사가 있는 곳(요셉 의원)과  거의 전부가 정부 돈(지원금)으로 삯꾼들이 운영하는 곳(국 공립 어린이 집)은  이처럼 서로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수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습니다.이런 곳은 종교 기관에서도 차이가 없다 할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공동체'에서는 사랑과 삯꾼은 결합될 수 없습니다.

국가로부터 봉급을 수령하는 '삯꾼이 지배하는 체제'에서는, 삯꾼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다른 이들 (어린양들)의 행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세상의 '한 실재'이기도 합니다. <게시글 ;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 참조>

이러한 행태에 방관하는 것을 침묵이라 하며 미화시키는 사람들은, 신앙이라며 유혹의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세상의 또 다른 실재입니다. <다른 어느 곳; 아기,어른,늙은이 -고아와 과부 -어린양들과 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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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직접 행하는 사람과 침묵으로 미화하며 죄악에 협력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써 특별히 서로 다르다고 평가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방관을 침묵으로 미화하는 그들이 그런 곳에 있게 되어지면 그같은 짓을 마찬가지로 할 것이기 충분히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삼위의 하느님과 일치하기를 하느님께서는 바라십니다. 사람에게 <사랑의 행복과 생명의 평화>가 삼위 하느님 안에서 일치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그러나 세상 안에서 세상에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은 신앙은 커녕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그 믿음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게서 '예수님'(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는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참으로 믿는 것이 신앙의 자세이며 신앙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함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살고있지 않기 때문입니다.공동체에서나 혹은 사람 각자에게서나 자기 안에,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머무르신다면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은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 안에 그리고 공동체 마음 안에 계시지 않을 때에, 학대하는 악의 고통과 생명의 존귀함이 없는 죄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반복되어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사람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게 현 시대에서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입니다. 율법 교사들, 수석 사제들, 바리사이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며 그 책임을 사람 자신에게 돌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자기 안에,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는게 신앙의 참된 모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살아 계셔야 한다고 말해야지 사람 자체에게 그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서 책임을 돌리면 그 사람은 혹은 그 공동체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며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람'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공동체'(예수의 형제회)는 자기 안에 예수님께서 머무르십니다. 잘못이 있다면 자기 (혹은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머무르시지 않는 자신의 '영적인 나태'를 자신에게 책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자기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머무르시지 않는 사람 (공동체)만이 당연히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 바리사이들, 수석사제들 ( 현대; 수도자들 포함)은 결코 예수님 처럼 되지 못하였습니다. 나 홀로 수덕주의 자신에게 보다 다른 사람에게 그 책망을 떠넘긴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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