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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05 조회수736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5월 5일 부활 제6주일



 
The Advocate,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everything
and remind you of all that I told you.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Jn.14,26-27)



제1독서 사도 15,1-2.22-29
제2독서 묵시 21,10-14.22-23
복음 요한 14,23-29


여러분에게 2개의 문제를 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10초 이내에 말해보십시오. 즉, 곧바로 생각나는 대로 답을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어느 옷 공장에서 다섯 벌의 셔츠를 만드는데, 다섯 대의 기계가 돌아갈 경우 완성하는 데 정확히 5분 걸립니다. 그렇다면 100벌의 셔츠를 만드는데, 100대의 기계가 돌아간다면 몇 분 걸릴까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어느 작은 연못에 수련이 자라고 있습니다. 자라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매일 수련이 덮은 늪의 표면이 두 배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연못이 수련으로 완전히 덮이는 데 48일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연못 표면 면적의 절반이 덮일 때까지는 며칠이 걸릴까요?

곧바로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 답은 아마도 100분, 24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는 정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5분, 47일입니다. 왜 그런지는 조금만 생각하시면 아시겠지요? 글 쓰는 지면이 적어서 그 이유는 적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머릿속에 즉각 떠오르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정답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여전히 심사숙고하지 않고 그럴듯해 보이는 가짜 답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평화도 그렇지 않을까요?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총기를 휴대할 수 있도록 하지요. 그러나 실제는 어떻습니까? 이렇게 총기 휴대가 가능한 나라에서 오히려 총기 사고와 강도가 끊어지지 않으면서 전혀 평화롭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면서 평화를 우리에게 남기고 가십니다.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그렇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 더 큰 힘을 추구하는 이 세상과는 달리, 주님께서는 오히려 평화를 위해 당신을 더 낮추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힘이 없는 분처럼 보이지요. 사실 이렇게 힘없음으로 어떻게 평화를 세상에 전해줄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폭력을 가져오는 막강한 힘이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평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에 힘으로 다른 나라를 점령했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를 떠올려 보세요. 그 나라들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나라는 거의 없지요. 하지만 반해 십자가라는 가장 힘없어 보이는 사랑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면서 진정한 평화를 계속해서 전해주고 계십니다.

세상에 기준에 젖어 사는 우리가 아닌, 주님의 기준에 젖어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닌, 사랑과 평화로 우리를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모습만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관심을 끌려고 하지 말고 관심을 보여라(마크 고울스톤).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때의 순수함이 영원하길...



내 안에 사랑 채우기

변호사 사무실을 새롭게 개업한 형제님께서 간절히 첫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형제님은 유능하게 보이려고 바쁜 티를 내기 시작합니다. 우선 전화기를 들고 사건 해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척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전화기에서 손을 떼고는 문을 열고 들어온 분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중요한 사건에 대한 대화 때문에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전화를 끊고 “죄송합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요...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새로 전화 신청해서 전화 놓아드리려고 전화국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되나 봐요? 누가 먼저 와서 설치했어요?”

바쁘고 유능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상대가 없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전화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나요? 결국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간 꼴이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 대한 우리의 모습 역시 반성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항상 힘주어 강조하셨던 사랑. 그 사랑을 우리들의 마음 안에 간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사랑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실제로는 없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면서도, 안으로는 많은 욕심과 이기심으로 세속의 기준만을 따르고 있지요.

이러한 모습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으로부터는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 안을 주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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