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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볼수록 좋은 삶 - 2013.5.5 부활 제6주일(생명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05 조회수37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3.5.5 부활 제6주일(생명주일)

 

사도15,1-2.22-29 요한 묵21,10-14.22-23 요한14,23-29

 

 


볼수록 좋은 삶

 

 


얼마 전 있었던 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로 시작하는 성모찬송가 서두의 가사 대로
아름다운 신록의 5월입니다.

얼마 전 수도원을 방문했던 선배수도사제가
신록의 꿈으로 활짝 피어나기 시작한 불암산을 보며 무심코 한 말이
화두처럼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볼수록 좋습니다.”

 

듣는 즉시 떠오른 생각입니다.

‘아, 볼수록 좋은 사람, 볼수록 그리운 사람,
볼수록 새로운 사람, 볼수록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과 더불어 마침 좋은 분이 방문했기에 ‘자매님은 볼수록 좋습니다.’하며 덕담도 나눴습니다.

볼수록 좋은 분, 볼수록 그리운 분,
볼수록 새로운 분, 볼수록 아름다운 분은 두말할 것 없이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기리며 방금 우리는 화답송을 힘차게 노래했습니다.

 

“창생이 하느님을 높여 기리게 하소서.”

 

볼수록 좋은 산을 통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또 제 두 가지 덕담에 대한 선배수도사제의 답이 또 일품입니다.

 

“신부님은 우리 수도원의 보물입니다.”
“보물이 아니라 고물입니다.”

 

즉각적인 신부님의 대답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사랑의 눈’ 만 열리면 볼수록 좋은 세상이요,
고물 같은 사람도 보물임을 깨닫습니다.

 

“신부님은 살아있는 성인(living saint)이십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 또한 겸손과 재치가 번뜩이는 대답으로
사랑의 눈이 열렸을 때 할 수 있는 어휘구사입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는 노 수사님과의 대화도 참 즐거웠습니다.
양 손에 지팡이 둘을 잡고 걸으시는 수사님의 말씀입니다.

 

“네 발로 걸으니까 참 편해.”

 

두발에다 두 손에 지팡이를 잡고 걸으시니 그대로 네발로 걷는 모습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하는데
이제 수사님은 어린이와 같아지셨으니 하늘나라는 맡아놨습니다.”

 

태어나면 누구나 얼마 동안 은 누워 지내게 되고, 그 다음은 네 발로 걷고
그 다음은 두발의 직립인간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지내게 되는데,
수사님은 두 발로 걸으시다가 이제 다리가 불편해져
양 손에 두 지팡이에 네발로 걷는 아이가 되셨으니
마음도 어린이와 같이 순수하고 평화로워지신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얼굴 표정에는 선함과 순수함이, 평화로움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존재자체가 선물이 되는, 볼수록 좋은 노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볼수록 좋은 삶’입니다.

볼수록 좋은 분이신 주님을 닮을 때 볼수록 좋은 삶이요 그 비결을 소개합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할 때 볼수록 좋은 삶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온 누리에 가득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눈이 열려 이런 주님 사랑을 깨달을 때 저절로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며는 예뻐져요.’라는 가사도 있듯이
주님을 사랑할 때 내면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얼굴에 꽃처럼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말로만의 공허한 주님 사랑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킴으로 검증되는
진짜 주님 사랑입니다.

그러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베드로에게 한 주님의 질문을
자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양들을 돌보라.’ 세 번 물으시고
세 번 역시 양들을 돌볼 것을, 사랑할 것을 신신당부하신 주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바르나바와 바오로의 선교열정 역시
주님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또 베네딕도16세 전임 교황님의 퇴임을 앞두고 하신 다음 감동적인 말씀도
그대로 열렬한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 온 마음으로, 내 온 사랑으로,
내 기도로, 내 묵상으로,
내 온 내적 힘을 다해,
나는 언제나 공동선을 위해 또 교회와 인류의 선을 위해 일하고 싶다.”

 

말씀하신 후 기도와 연구의 숨겨진 삶을 통해
퇴임 후 계획을 실천하고 계신 전임 교황님이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할 때 볼수록 좋은 공동체입니다.
볼수록 좋은 여기 사랑의 수도공동체이기에
끊임없이 고향집인 아버지의 집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묵시록에서 요한이 환시를 통해 본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공동체를 꿈꾸는
우리 교회공동체요 수도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의 계명을 지키면
아버지와 예수님 당신께서도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 것이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묵시록에서 요한이 본 환시가
그대로 거룩한 성전 미사를 통해 실현됨을 깨닫습니다.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의 그곳의 등불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 중 하느님 영광의 빛이,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빛이 가득한 성전이 흡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같습니다.

 

 

둘째, 평화를 선사하는 삶일 때 볼수록 좋은 삶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 좋은 선물이 평화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선사 받는 주님의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을 찾아 끊임없이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고백성사 보속 처방전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오늘 복음 구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내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이런 주님의 평화를 받아 이웃에 평화를 선사할 때 볼수록 좋은 사람입니다.
노년에 존재 자체로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평화입니다.

아프니카 기니에는
‘노인 한 사람을 잃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격언이 있다 합니다.

이웃에 평화를 선사하는 노년이라면 도서관 하나 그 이상일 것입니다.

 

평화는 구체적입니다.
화내지 않는 것입니다.

화내지 않는 것도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화내면 큰소리로 다투게 되고 싸움이 일어나 평화를 잃습니다.

평생 한 번 화내지 않았다는 두 원로 신부님의 고백입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화를 낼 때는 내라 하는 데
  체험 상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화를 내면 내가 먼저 다치고 언제나 후회하게 됩니다.
  화
가 날 것 같으면 산에 가든지, 운동하든지, 자전거 타든지 하여 풀었고,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노 선배수도사제의 고백과 더불어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지낸 인천교구 오경환 사제의 고백이 또한 감동입니다.

 

“제 50년 사제생활의 원칙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존중하기와 화내지 않는 것이었어.

화는 타인이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생겨나는데,
이때 화를 내지 말아야 해.

한 번 화가 나면 참기 어려우니 아예 화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해.

누가 나를 무시했다고 해도 내가 작아지지는 않아.
나는 있던 그대로 있어.

그걸 꼭 믿어야 해.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나를 치켜세워준다고 갑자기 내가 커지는 것도 아니잖아.

현실 그대로 나를 볼 줄 알아야 해.
상대가 나를 무시했다고 화를 내면 결국 그 사람이 나를 조종하는 거야.

화가 나서 안할 말까지 해버리면 더 복잡해져.
그때야말로 내가 작아지는 거야.
사과를 해야 하고 후회도 생기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지 왜 작아지게 만들어?”

 

금과옥조의 지혜로운 조언입니다.
화내지 않는 삶 자체가 그대로 이웃에게 평화를 선사하는 삶입니다.

 

 


셋째, 짐을 덜어주는 삶일 때 볼수록 좋은 삶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무거운 짐에 허덕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짐을 덜어주는 분입니다.
주님이 짐을 덜어줘야 우리도 이웃의 짐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또 자신에게 선물이 되는 삶입니까? 짐이 되는 삶입니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이렇게 우리의 짐을 덜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짐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공의회 어른들의 분별의 지혜로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불필요한 짐을 지우지 않는 게 사랑입니다.
환상의 어리석음으로
얼마나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요.

주님을 만나 이런 짐들을 내려놓을 때 참 가볍고 자유로워집니다.

 

“퇴임 교황님은 교황 직에서 내려 오셔서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겠습니다.”

 

저의 말에 대한 노선배수도사제의 다음 답변이 저에게는 깨달음의 지혜였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내려오고 올라감은 없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그 자리입니다.
  단지 짐을 내려놓음으로 자유로워지셨을 것입니다.
  그동안 겪었던 모든 시련, 고통, 어려움, 상처들은 모두 풍부한 거름이 되어
  풍요로운 영적 결실을 맺는 퇴임 후의 삶이 될 것입니다.”

 

퇴임 베네딕도 16세 교황님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지상에서 마지막 순례여정을 시작한 하나의 단순한 순례자이다.”

 

끝은 시작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새로 하느님을 향해 순례여정을 시작한 퇴임 교황님이십니다.

 

 

부활 제 6주일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를 당신 미사축제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자,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자,
우리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시고자
우리를 미사 축제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이웃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되었고,

주님께서 짐을 덜어 주셨기에 이웃의 짐을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볼수록 좋은 삶,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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