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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쁨이 있는 수고와 헛수고의 구별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0 조회수635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부활 제6주간 금요일


<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복음: 요한 16,20-23ㄱ






성모자


오라지오 겐틸레스키 작, 로마 국립미술관


     < 기쁨이 있는 수고와 헛수고의 구별법 >

           세진이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아이입니다. 두 다리 없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진이가 있던 시설에 봉사활동을 왔던 한 자매가 세진이를 입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어머니는 세진이에게 혹독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일부러 세진이를 이불 위에다 계속 넘어뜨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수없이 시켰습니다. 안 다치게 넘어지는 것과 또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것이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 한 번은 형들이 세진이의 의족을 망치로 부셔버려서 피를 흘리며 기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진이는 엄마와 함께 이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마리톤, 등산, 스키 등을 남들 못지않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산도 아주 높은 산까지 정복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수영이었고 수많은 상을 탄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 수영 연습을 할 수영장도 제대로 찾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수영장 청소를 열심히 해 주는 대가로 세진이도 수영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TV에 나와서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세진이를 보았는데 너무나 당당해 보였고 그것을 쳐다보는 어머니도 매우 흐뭇한 표정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해산의 고통을 겪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전에는 큰 두려움과 고통에 사로잡히지만 아기를 낳은 후에는 새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기뻐서 그 고통을 잊는다고 하십니다. 이런 기쁨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수고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세진이와 그 어머니는 매우 큰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왔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그 기쁨의 열매를 보게 된 것입니다. 세진이는 지금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데 어머니는 세진이가 사회에 남 못지않게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은 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수고가 항상 기쁨을 수반할까요? 수고는 하는데 기쁨이 없다면 그것을 헛수고라고 합니다. 헛수고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하는 지금의 수고가 기쁨이 있을 것인지 아니면 공허감만 남을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평생을 고생했는데 그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생이었다면 그 얼마나 허망할까요?

 

예전에 한 동네에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려고 했습니다. 반찬도 어머니가 집어주는 것을 먹어야 하고 옷도 어머니가 정해주는 것을 입어야 했습니다.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들을 빼앗겼다는 마음에 어머니는 며느리를 들들 볶았고 심지어는 밤에 아들과 며느리 방 앞에서 죽치고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며느리는 집을 나갔다가 남편에 의해 다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가 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아들도 결국 자신의 아내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여 다시는 보지 않겠다며 어머니를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생각했습니다.

나만큼 아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아들이 내 사랑을 몰라주는구나!’

 

가상임신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는 아기를 너무도 가지고 싶어 한 나머지 임신의 똑같은 변화가 몸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아기가 들어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가 헛수고입니다. 헛수고인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고를 했을 때 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 자신을 충족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수고는 결국 기쁨이 아니라 후회와 공허함만 남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머니가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것때문에 기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아기를 낳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기쁜 것입니다. 나를 위한 수고는 종국에 허망함만 남기는 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수고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종국에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을만한 기쁨을 얻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헛수고만 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는 일들이 나를 위해서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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