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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힘'은 높은 데서 온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1 조회수57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예수 승천 대축일


<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


복음: 루카 24,46ㄴ-53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작, (1520-22)


     < '힘'은 높은 데서 온다 >

          20101116일 오전 7시에 게임 중독 된 청소년이 엄마를 목 졸라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12살 아이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는데, 엄마는 이미 질식사한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현장을 조사하던 중 또 한 채의 사체를 발견했습니다. 베란다에 올해 15살인 중학교 3학년의 아들이 전깃줄에 목을 매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 게임 때문에 엄마와 다툼이 많았는데 엄마를 목 졸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학생은 엄마에서 몹쓸 짓을 해서 미안하다는 유서를 외할머니에게 남겼다고 합니다.

방송사와 경찰의 탐문 조사에 따르면 평소부터 게임으로 인해 엄마와 다툼이 많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게임을 시작했는데 거의 매일 게임에 매달려 있고, 주말에는 새벽 2,3시까지 하다가 잠드는 것이 예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 지각하게 되고, 학교생활도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냥 다툼 정도가 아니라 평소에도 게임을 말리는 엄마에게 폭력행사를 했다고 하니 과히 충격적입니다.

[발췌: 정철상의 커리어노트, 게임 중독 된 청소년이 엄마를 살해한 충격적인 뉴스를 보고 느낀 점]

 

이렇게 좋은 날 이런 안 좋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사례라 이것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아이가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 아이의 게임중독 때문이었을까요? 만약 게임중독이 살해원인이라면 음악을 하지 말라고 해서 사고를 쳤다면 음악중독이고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해서 살해를 했다면 운동중독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게임중독이었다면 그 좋은 게임을 두고 자살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어머니의 잔소리를 잘 피해서 게임에 더 열중하였을 것입니다.

게임은 아이의 유일한 에너지원이었습니다. 누구나 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젖을 먹지 못하면 공갈젖꼭지라도 물어야 하는 게 사람입니다. 그러면 공갈젖꼭지를 물게 된 이유가 그 원인이지 공갈젖꼭지 자체가 살인까지 가게 만드는 근본원인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공갈젖꼭지를 물게 된 이유는 어머니가 젖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실 젖을 주지 않은 사람에게 그 죽음의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국제신문에는 이 사건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친 살해 중학생 불우했던 가정환경최 군, 가정사에 항상 불만. 홀로 생계 꾸린 어머니는 아들 통제와 보살핌에 한계. 꾸짖는 어머니와 갈등 되풀이저항심에 폭력게임 빠져. 수업 중 잠자고 성적 최하위학교도 게임중독 파악 못해. 부모는 별거, 전학 후 게임중독 심해져정신감정 의뢰도”[국제신문]

 

그렇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삶의 에너지를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그 에너지를 받아야합니다. 에너지는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시지 않으면 성령님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오늘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올라가시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결국 높은 데서 오는 힘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떠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신다는 것은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면 더 가까이 있고 싶고 거기에서 사랑의 에너지가 샘솟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를 보내시려면 아버지께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임은 사람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더 낮은 수준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는 없으니 젖이 나오지 않는 말 그대로 공갈젖꼭지인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어머니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받았어야 하는데, 문제는 어머니도 그 줄 에너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 별거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에너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고 그래서 살기 위한 방편으로 찾은 것이 공갈젖꼭지인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공부 잘하던 고3학생이 아이가 어머니를 살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가 전국 1등이 되기를 강요하며 많은 구타를 했었습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없고 강요만 한 이유는 아이에게 줄 사랑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데 남편과 별거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에너지를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없다면 교회에라도 나와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국기에 있는 태극 그림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극은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동양이든 서양이든 우주의 생성 원리입니다. 하늘과 땅, 불과 물, 양과 음이 만나는 그림입니다. 사실 물은 땅으로 내려오는 성질이 있고, 불은 하늘로 오르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하늘로 올라 불과 결합되었다가 불의 에너지를 담고 땅으로 다시 떨어지지 않으면 땅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순환이 있어야만 땅에 생명이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따지면 머리가 양이고 배가 음입니다. 만약 배의 차가운 기운이 척추를 타고 머리로 올라가 머리의 뜨거운 기운을 지니고 다시 몸으로 쏟아지지 않으면 혈이 막혀 있다고 말합니다. 이 혈을 뚫어주기 위해서는 족욕이나 반신욕을 권장합니다. 물을 가열하면 뜨거워져 위로 올라가듯이 배의 차가운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 거기서 에너지를 흡수하여 밑으로 내려와야 온 몸에 에너지가 골고루 분배가 되어야 건강한 몸이 되어 생산 활동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 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는다.”(이사 55,10-11)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고 그 말씀은 물과 같이 하느님의 에너지를 담고 땅을 적셔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신 것은 다시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의 에너지를 품고 세상으로 내려오기 위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오른 이유는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다시 오시기 위함이요, 끊임없이 성령으로 축성된 성체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이는 마치 성령으로 성모님에게 오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을 안고 다시 오시기 위해 떠나시는 것이 승천인 것입니다.

 

에스델은 유다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어 왕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다인을 싫어하는 하만이라는 관리가 임금을 꾀어 한 날에 페르시아에 있는 유다인을 모조리 죽이도록 명을 내립니다. 에스델은 혼자만 살 수 없었습니다. 임금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 앞에 나가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임금에게 갑니다. 임금은 하만과 함께 있었는데 에스델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왕비의 민족을 죽이려 한 하만을 처형하고 유다인을 멸하라는 명을 철회합니다.

성모님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먼저 아시고 예수님께로 향합니다. 예수님은 전혀 기적을 하실 마음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청이기 때문에 들어주십니다. 그렇게 교회에 주어지는 포도주가 바로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살아가는 자녀들입니다.

성모님이 하느님께로 먼저 향할 줄 아셨기에 엘리사벳에게 성령을 전해 주었듯이, 그리스도도 아버지께 향할 줄 아시기에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어있습니다. 높이 있는 물의 에너지를 위치에너지라 합니다. 이 말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에너지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에너지는 항상 높은 곳에서 찾아야합니다. 남편은 하느님에게서, 아내는 남편에게서, 아이는 어머니에게서 그 에너지를 받아야합니다. 남편이 여자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려면 하와에게 선악과를 받아먹는 것과 같고, 여자가 자녀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려면 뱀의 꼬임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가 힘 있게 살아가기 위해 아래가 아닌 위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마지막 가르침이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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