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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의 영광은 이미 시작되었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2 조회수561 추천수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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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 루카 24,46ㄴ-53


 

하늘의 영광은 이미 시작되었다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며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실망과 좌절에 빠진 제자들에게 사랑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길 부탁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회개를 선포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주님승천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마르16,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사도1,9).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24,50-53).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이 중심입니다. 이는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 올림을 받으셨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름’과 ‘하늘’로 상징되는 하느님의 영광과 능력 안으로 예수님의 인성이 들어가셔서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자신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장차 하늘로 오르는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12,3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우리에게도 하늘에 오르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느님의 초월적인 임재에 동참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떠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머나먼 이스라엘을 떠나, 아득한 과거를 떠나 우리가 사는 세상 한가운데로 찾아와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 묶여있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성경 탈출기에 보면, 모세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3,7).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구체적인 소리를 듣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계신 곳, 그 하늘로 오르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이 지상에 국한해서 생각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천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이 세상 너머로 비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 고난을 겪고 죽음을 감당하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미리 체험하신 주님덕분에 우리도 하늘의 영광을 희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묵시록 2장 3절에서 4절의 말씀을 보면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삶의 자리에 계십니다. 하늘의 영광은 이미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시작되었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실망과 좌절 속에 애가 탔습니다. 그 와중에 예수님의 부활은 더없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충만한 기쁨을 끝까지 누리고 싶은 것이 제자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느님 품으로 가십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열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성숙한 제자들을 남겨둔 채 떠나가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노래 한 곡 불러 드리겠습니다. “떠나는 이마음도, 보내는 그 마음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 다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꼭 한마디, 남기고 싶은 그 말은, 너만을 사랑했노라. 진정코 사랑했노라. 사랑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이제는 너와 나, 다시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꼭 한마디, 남기고 싶은 그 말은, 너 만을 사랑했노라. 진정코 사랑했노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대면하여 당신을 두고 도망했던 제자들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한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할 새 소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안으로는 대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영광에로 떠나시면서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주셨고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데서 오는 힘을 입을 때가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2,49). 요한복음에는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요한14,2).고 하시며 우리도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높은데서 오는 힘을 입은 제자들의 마음은 이랬습니다.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스승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주님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주님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제 제자들에게 예수님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제 더 이상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시에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존재로 바뀌셨다는 뜻도 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과 천사들, 성인들은 하늘에 머물고, 땅 속에는 마귀나 악인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 마치시고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셨다는 뜻을 담아 승천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승천은 하느님의 영광에 동참함을 뜻합니다. 그 영광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는 우리의 승천은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나에게‘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삶의 자리를 통해 승천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은 하느님의 영광을 지금 여기서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의 근본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과 하나가될 수 있고 승천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고,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에페6,6).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우리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합당히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고,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함의 힘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성 그레고리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늘의 영광에 참여함은 이미 여기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을 지옥처럼 사는 사람은 내일도 지옥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을 천국처럼 사는 사람은 내일도 천국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부터 영원을’ 즐겁게 희망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인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종말이 다가올 것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수는 없습니다. 천상을 희망하는 만큼 여기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천국의 문, 하늘의 문은 여기서부터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죽음이란 날이 밝아서 촛불을 끄는 것이다.” “천국길을 걷기 위해 지상의 험한 길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는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결정적으로 죽음을 통해 하늘의 영광에 온전히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지오 성인은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정하신 때에 죽기를 원합니다. 이는 죽음으로써 만이 하늘에 계신 그리운 아버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산고의 진통을 겪어야 새 생명이 탄생하듯 육신의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삶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따 성녀도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그분의 뜻입니다.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는 것보다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욱 소중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소화데레사 성녀는 “그 어느 날 아침, 내가 죽어있는 것을 보아도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데려가신 것뿐입니다. 하느님께서 필요하셔서 불러간 줄로만 아십시오.”하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의 삶을 넘어 승천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믿음의 삶입니다.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기쁨을 차지하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이제와 우리 죽을 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다른 것은 하나도 안 바랄께요.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그대가 언제라도 좋으니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저 잘 놀다 갑니다.”

                                                    맑은 웃음으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떠나게만 해 주십시오.....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우리 죽을 때 환한 웃음 지으며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떠나가자고

                                                    “고마웠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저 잘 놀다갑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그렇게 남은 하루하루 남김없이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불살라가자고.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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