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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참 좋은 선물 - 2013.5.19 주일 성령강림 대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9 조회수39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3.5.19 주일 성령강림 대축일

 

사도2,1-11. 1코린12,3ㄷ-7.12-13. 요한20,19-23

 

 


성령의 참 좋은 선물

 

-성령예찬-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알렐루야, 주의 얼이 우주에 충만했으니, 어서와 조배 드리세.”

 

주일 새벽,
여기 수도승들은 성령강림을 한 마음으로 경축하며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습니다. 이어 방금 전 화답 송 후렴으로 우리 또한 성령강림을 경축했습니다.

 

“하느님 당신 얼을 보내시어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소서.”

 

온 누리에 가득한 주님의 성령입니다.
성령 강림으로 우리의 허무한 삶은 충만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의 성령강림 대축일의 위치가 참 오묘합니다.
5.17일 석가탄신일과 5.19일 성령강림대축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5.18일 민주화 운동의 날이 흡사 부처님과 예수님의 위로를 받고 있는
5.18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 같습니다.

 

어제 저녁에 이은 오늘 새벽,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이한 우리 여기 수도승들의 하느님 찬미의 성무일도가
유난히 힘찼습니다.

성령 충만한 분위기였습니다.
오늘 새벽 3:30분 갑자기 엘리야 수사가 찾아왔습니다.
동생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병원에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수도승들은 5:50분부터 6:40분까지 성령 충만한 분위기에서
거의 1시간 동안 주님을 찬미했고
이어 저는 6:43분 엘리야 수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테레빈 제 동생이 6:30분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동안 약 3년간 암으로 투병 중이던 엘리야 수사의 동생 테레빈이었습니다.
울먹이며 전화하든 엘리야 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아, 이 유리 테레빈은 하늘나라에 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강림 대축일 여기 수도승들의 성령 충만한 하느님 찬미의 기도 중에
임종을 준비하다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생각이 들으니
새삼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주님의 위로와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느님의 유일한 소원이, 기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모두의 행복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유일한 소원이자 기쁨입니다.

하여 좋으신 주님은 우리 모두 성령의 선물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고자
이 은혜로운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축제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첫째, 성령의 참 좋은 선물은 소통과 일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려 불통과 분열입니다.

소통과 일치가 공동체의 이상이라면 불통과 분열은 공동체의 현실 같습니다.
불통과 분열로 몸살을 겪고 있는 공동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나라, 학교, 회사, 가정, 교회 등 끝이 없습니다.

바로 불통의 벽을 무너뜨리고, 분열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처방은 오직 하나 성령뿐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바로 이런 성령을 받을 때
비로소 불통의 벽은 소통의 문으로, 분열은 일치로 바뀝니다.

성령만이 공동체는 물론 개인을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공동체가 그 모범입니다.
성령 강림과 더불어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심으로 완전 소통으로
일치의 공동체가 성취됩니다.

사도들은 여러 나라 말로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장엄하게 선포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니 하느님과 완전 소통이요
말은 다 달라도 저마다 자기 지방말로 들으니 다 서로 간 소통입니다.

성령의 참 좋은 선물이 소통과 일치입니다.

 

 

 


둘째, 성령의 참 좋은 선물은 평화와 기쁨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의 참 좋은 선물이 평화와 기쁨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요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평화와 기쁨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성령을 받을 때 비로소 평화와 기쁨입니다.

평화와 기쁨이 이상이라면 불안과 슬픔은 현실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불안 중에 살아가는 지요.

아무리 부유해도 소유가 행복을, 기쁨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걱정과 불안, 두려움 중에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참 평화입니다.
성령을 통해 선사 받는 주님의 평화입니다.
고통과 시련 중에도 불구하고 누리는 내적평화입니다.

 

성령은 흡사 효소 같습니다.

온갖 과일을 발효케 하여 향기로운 술이 되게 하듯
성령의 효소가 불안과 두려움을 평화로,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킵니다.

미사를 통한 주님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 평화와 기쁨입니다.
제자들처럼 우리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기뻐합니다.

이 기쁨 역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과 만남으로부터 샘솟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와 비교될 수 있으며 모든 죄를 씻어 버립니다.
기쁨은, 완전한 기쁨은 하느님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유대인 랍비, 바알 셈의 말이 생각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은
  기쁨으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을 형제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은 인간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다.”

 

주님 주시는 참 좋은 성령의 선물이 평화와 기쁨입니다.

 

 

 

셋째, 성령의 참 좋은 선물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오늘 알렐루야 환호송이 참 좋습니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성령의 참 좋은 선물이 사랑입니다.
성령으로 인해 끊임없이 타오는 사랑의 불입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성령입니다.
사랑 중에 으뜸이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숨을 불어넣으며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숨을 불어넣었다는 말에서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인간 창조가 연상됩니다.
바로 성령으로 인한 재창조를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끊임없이 재창조 되면서
하느님의 용서하는 사랑을 체험할 때
비로소 용서하는 사랑이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이런 성령 충만한 공동체의 용서는 그대로 하느님의 용서하는 사랑을 반영합니다. 성령의 참 좋은 선물, 사랑과 용서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고자,
성령강림 대축일 미사에 우리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소통과 일치, 평화와 기쁨, 사랑과 용서의 성령의 선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어, ‘평화의 사도’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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