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중심 - 2013.5.22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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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5-22 | 조회수29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3.5.22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집회4,11-19 마르9,38-40
-사람 중심-
“온 세상아, 주님 앞에서 덩실덩실 춤추어라.
아침 성무일도 중 마음에 와닿은 시편구절입니다.
신록의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세상이 오늘 역시 두서없는 여러 깨달음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1.신록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창 밖 푸른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2.수도원 정문 옆,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의 몸통이
“나무에 벌레가 먹을 것 같아 몸통을 천으로 에워싸 꽁꽁 묶어놨습니다.
몸통의 중심이, 뿌리의 중심이 건강해야 가지가 꺾이고 나뭇잎이 병들거나 떨어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닌데
사람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3.수도원 주차장을 온통 에워싸고 있는 하늘의 하느님 향한 찬미의 사랑이요,
4. “안셀름 그륀 신부님에게 책을 쓰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라 합니다.”
수녀님이 들려 준 말도 생각납니다. 글을 쓰는 노동이 기도가 된, 이런 영성의 대가들에게는 따로 쉬는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저에게도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 시간에 이어 강론을 쓰는 시간도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이 깊어지면서
5. ‘사람이 먼저다’ 예전 문재인 대선 후보의 대선 모토도 생각납니다. 이 또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모토와 그대로 일맥상통합니다.
사람 있고 돈 있지, 돈 있고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중심에서 저절로 진정 사람 중심입니다. 사람 중심은 자칫하면 사람이 절대적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과 삶’ 이게 분별의 잣대입니다.
지혜로운 분별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만 가능합니다. 주님이 바로 지혜이자 지혜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집회서의 말씀이 참 신선합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필로소피아)이 바로 철학의 어원입니다. 의인화된 지혜가 가리키는바,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지혜 자체이신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질 때 사랑은 바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 지요. 이런 지혜의 안목 없이 다양성의 일치는 불가능합니다. 정말 너그럽고 자비하신,
“막지마라.
세상에 그리스도교신자가 아니면서 종파에 관계없이 평화를 위해, 공동선을 위해 애쓰는 아마 이런 경지라면 종교 간의 모든 갈등과 불화도 저절로 해소되어 하느님 중심 안에 깊이 뿌리내릴수록
어제 본원장 신부님과 주고받는 덕담도 생각납니다.
보고 배움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관대한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 중심 안에 항구히 정주할 때 주님은 매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 지혜롭게 하시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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