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승리하는 삶 (요한복음 16,25~33 )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4 조회수363 추천수5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보는 요한복음 / 도반 홍성남 신부

 

                  

 

 

요한복음16,25~33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슬퍼하지 마라,
너희가 고난을 겪을 텐데 용기를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너희도 세상을 이길 것이라고 격려하시는 말씀을 하신다.

세상살이 안에서 세상이 내게 주는 부담, 스트레스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피정이라고 한다.

1. 피정
한적한 시간에 나 혼자서 하느님과 일대 일로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정신없이 산다.
그런 상황 안에서는 자기 자신을 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루 종일 복잡한 생활이 계속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볼 시간도 없고
나중에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자기 자신의 많은 에너지상실이 일어난다.

일로 바쁜 것보다는 그냥 머릿속이 바쁜 사람들,
지나치게 바쁜 사람들은 나중에 후유증으로 자기 통제력이 상실된다고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통제력이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 통제력이 약해져 거절을 못하고
자기 시간을 침범당하면서 사는 손해 보는 삶을 산다.
소크라테스는 너무나 바쁜 삶의 허망함을 경계하라고 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제일 싫어한다.
매일 한갓진 시간을 갖는 사람들은
한가한 시간 안에서 재충전을 사는 삶의 지혜로움이 있다.

 

지혜란 분주한 일상과 의도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었을 때 지혜가 타난다고 한다.
간간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들은
바쁜 삶에 휘말려들지 않고 그 삶을 관조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2. 상실감을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주디트 비올스트는 꼭 필요한 상실이라는 말을 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찰하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이 성장을 하려면 그 성장의 주원동력이 상실이라고 얘기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인생의 성장 주기에서 보면 한 단계 올라가려면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청소년기를 살아야 되는데 유아기적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 단계의 살았던 삶의 방식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예전의 것을 놓으면 불안해서 안 놓으려고 하는데

 

안 놓게 되면 올라가지도 못한다.
세상을 정말 이기는 삶을 살려면,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보고 어린애 같다는 평가는 안달복달하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연연해할 때이다.
어른스럽다는 평가는 절제를 잘 하는 사람을 어른스럽다고 한다.

절제란 상실감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실감을 견디지 못할 때 어린애 같다고 한다.
그것을 잘 감수하면 어른 같다고 얘기한다.


3. 사람의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과 투자의 연속이라고 한다.
시간의 투자, 자본의 투자 등,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면
많은 것을 투자하게 되어있는데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투자를 했는가가 중요하다.

그 질과 내용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이 마리아보고 너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셨다.
말씀 듣는 것을 선택한 마리아의 선택에 지지해주셨다.
우리도 그런 평가를 끊임없이 듣는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에 다른 사람의 평가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안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선택에 대한 평가는 죽을 때 이루어진다.

우리가 평생 동안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은 크게 3 부분이다.
생리적, 정신적, 영적인 것이 있다.

마슬로(Maslow)의 욕구이론에 3 가지가 있다.
생리적 선택과 정신적 선택 부분은 소유이다.
생리적, 정서적으로 무엇을 갖기 위해 투자를 계속하면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이런 선택과 투자가 완전한 충족과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외적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다음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즉 정신적 욕구가 일어난다. 여기까지도 사실은 소유이다.
그 다음에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영적 단계로 들어간다.
이것도 엄격히 말하면 내가 하느님의 세계를 내가 갖는다는 소유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세계를 갖기 위해서는 생리적, 정서적 단계를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면 백배를 갚아주겠다는 말씀의 의미는 생리적, 정서적 단계 상태에서 보는 눈과
영적 단계 상태에서 볼 수 있는 눈이 달라진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버리고 따르라는 것이다.
부자청년의 경우는 이 단계를 위해 다 버리지 못해 영적 단계로 못 올라온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영적 단계만 가지고 간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 현실이다.
평소에 이 영적단계에 마음을 두고 사시던 분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생리적, 정서적 단계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영적인 삶을 추구하면 못 채운 것이 한이 된다.
가진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는데

하느님만 보고 살 거라고 하면 한이 남는다.
살아있을 때 너무 억압해놓았던 것이 드러난다.
상실이란 많이 가졌을 때 내려놓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적인 삶을 원할 때 생리적, 정서적 단계가 너무 안 채워진 사람들은
어느 정도 갖고 어느 정도 칭찬을 받아서 채워야
영적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살아있을 때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  

 

 

                                                     

 

 

 

 

 

 

 

자료출처 : 도반모임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