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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觀)’이 먼저다 - 2013.5.25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5 조회수39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3.5.25 토요일 성 베다 베네라빌리스 사제학자(673-735) 기념일

 

집회17,1-15 마르10,13-16

 

 

 


‘관(觀)’이 먼저다

 

 


오늘은 ‘관(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돈이, 밥이 아니라 관(觀)이, 보는 눈이 먼저입니다.

 


아카시아 향기 그윽한 5월입니다.

아카시아 향기에 하느님의 향기를 묵상할 수 있음은
뚜렷한 ‘하느님 관’때문입니다.

관상(觀想), 관조(觀照), 인간관(人間觀), 신관(神觀), 우주관(宇宙觀),
자연관(自然觀), 구원관(久遠觀), 교육관(敎育觀), 가치관(價値觀),
생사관(生死觀), 국가관(國家觀) 등에서

제대로 된 관(觀)이 사라져 위기의 현대인들입니다.

보는 눈의 관이 없어 온갖 유혹에 빠져 자기를 잃고 방황합니다.

아주 예전에 쓴 ‘봄(觀)’에 관한 글도 생각납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다

삶은 흐른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가을의 황홀과 겨울의 적요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강함과 약함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다-(1998.11.4)

 

 

 

 

 


관이 받쳐줘야 자존감도 살아납니다.

관이 사라져 자존심만 무성하고 자존감은 바닥입니다.

 

바로 이의 적나라한 표현이 성형공화국이라는 오명입니다.
예전에는 한 건물에 층마다 다른 계파의 교회가 들어 선 한국의 진풍경이었다면 지금은 층마다 성형외과가 성업중인 게 새 진풍경이라 합니다.

 

성형 광풍의 외모지상주의는
그대로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자존감 위기의 표현입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얼굴성형이 아니라 마음성형이요,
관의 중심이 잡힐 때 저절로 자존감의 회복에 마음 성형도 이루어집니다.

 

사실 끊임없는 회개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보다
자존감 회복에 좋은 마음 성형도 없습니다.

관이 정립되어야 비로소 인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관이 사라지면 자존감도 사라져
짐승도, 악마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집회서는 우리 믿는 이들의 하느님 관과 인간관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을 입히시고,
당신 모습으로 그들을 만드셨다.

 

‘그분께서는 분별력과 혀와 눈을 주시고, 귀와 마음을 주시어 깨닫게 하셨다.’

 

 

 


온통 주어는 하느님이고 인간은 목적어입니다.

하느님 없이 사람을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문제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관과 인간관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이런 하느님 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의 모든 관들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로 끝난 아침성무일도 때 코헬렛은 허무를 노래하는 것 같지만
실은 ‘하느님 관’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코헬11.9).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코헬12.13).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코헬렛입니다.
이래야 허무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눈으로 볼 때 세상은 사랑의 충만 이지만
하느님의 눈을 잃어버릴 때는 텅 빈 허무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예수님의 ‘어린이 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단순성, 개방성, 수용성이 바로 어린이의 특성입니다.
어린이때부터 종교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어린이성 회복입니다.
바로 끊임없는 회개가 어린이 성을 회복하여
단순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신 주님은
역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끌어안으시고 축복해 주시어
어린이성을 회복시켜 주시어 어린이처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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