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삼위일체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6 조회수343 추천수3 반대(0)

지난 한 주일 동안 수련장에는 1500여 명이 다녀갔습니다. 버스는 40대 정도가 왔다 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수련장을 이용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정리해 주시는 직원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데, 주님께서 제게 큰 은총을 주십니다.

행사를 하면 중요한 것은 날씨입니다. 노인대학 사목부에서 어르신들이 오실 때면 비가 오곤 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어르신들께서 즐겁게 지내셨습니다. 성령 쇄신 운동 봉사자들은 인원이 많아서 운동장에서 미사를 봉헌했는데 비가 내렸습니다. 모두들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비가 조금씩 그쳤고, 영성체를 할 때는 비가 모두 그쳤습니다.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비가 내리지 않도록 기도를 했는데 비가 내렸습니다. 하느님께 시간을 지정해서 기도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에 비가 내렸습니다. 제가 비가 내리지 않도록 기도를 했는데 비가 내렸습니다. 제가 장소를 지정해서 기도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용문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도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 주십시오. 하지만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사위는 사람이 던지지만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조금은 충격적인 그리고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운동을 하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손님 중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손님, 손님들끼리 화목하고 친교를 나누는 손님, 손님들끼리 다투고 욕하는 손님, 직원을 하인처럼 대하는 손님, 말을 함부로 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들 중에는 배움이 많고, 재산이 많고,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배움의 크기가, 재산의 많음이, 능력의 뛰어남이 손님의 친절과 예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종교인들 중에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 서로 다투는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마치 제가 그런 것처럼 미안했습니다. 직원은 다행히 제게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처럼 친절하고 예의 바른 손님은 많지 않습니다.’

수련장에도 많은 분들이 오십니다. 이곳에서 지친 일상의 피곤을 풀고, 하느님을 만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가끔씩 이곳을 이용하시고 떠난 분들이 머물던 곳을 보곤 합니다. 어떤 분들은 마치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처럼 머물다 가신 자리가 깨끗합니다. 어떤 분들은 약간의 흔적을 남겨 주십니다. 어떤 분들은 무척 바쁘셨는지 놓고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돋보기, 옷, 가방과 같은 것들을 놓고 가십니다. 어떤 분들은 떠난 뒷모습이 참 화려합니다. 내가 떠난 자리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떠난 자리를 보며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완벽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완벽한 역할분담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 신약에 와서 계시된 교리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한 분이신 '야훼'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었지만, 그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요한14,1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10,30)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할에 대해“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16,13) 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마태 28,19)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해서 거듭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교리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통해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리는“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흔히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질문에 대해 “하느님은 시작도 마침도 없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하느님은 악의 그림자도 없는 전선(全善)하신 분이시다.” 등등으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설명보다 가장 우리 마음에 깊이 와 닿는 설명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4,9)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말은 가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고 할 때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은 독립된 위격(位格 : persona)이지만 서로를 향해 자신을 완전히 다 내어주며 상호수여(相互授與) 하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신 분이십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드러난 삼위의 역할을 통해 본다면, 세상을 창조하신 일은 성부께서 이루셨고, 죄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진 인간을, 자신을 완전히 내 놓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일은 성자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깨달음과 능력을 주시며 성화의 길을 가도록 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는 마치 촛불이 정전(停電)이 되었을 때는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역할을 하고, 어떤 것을 태우거나 녹일 때는 '열(熱)'로서 역할을 하고, 어떤 장식을 할 때는 갖가지 '색(色)초'로 예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촛불은 항상 빛과 열과 색을 같이 지니고 있듯이 세상 창조와 구속사업과 성화에 항상 성부 성자 성령은 함께 계십니다.

3. 삼위일체 교리는 사회과학(정치, 경제, 사회)의 원리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잘 이해할 수도 없고, 잘못하면 이단자 취급받기 십상이므로 그냥 "그렇다 치고 넘어가야 하는 교리"로, 따라서 우리의 일상의 삶과는 무관한 교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신학자들은 "삼위일체 교리야말로 정치, 경제 사회 등 사회과학의 근본 원리가 들어있는 교리"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셋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 교리가 반목과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더불어 사는 상생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해 해체되는 가정이 속출하고, 점심도시락을 싸 가지 못하는 결식아동이 늘어 가는데도, 호화 수입품 가게와 고급 룸살롱은 호황을 누린다니 엄청난 빈부격차를 실감하게 하는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는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여러 집단과 계층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제(稅制)나 기타 법과 제도를 통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빈부격차의 해소, 노사화합의 원리, 가정평화의 원리가 바로 셋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향해 자신을 내어주려는 진정한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을 누리고 산다면 그 가정은 진정한 성(聖)가정이며 그곳에 하느님의 생명이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가정(聖家庭)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삼위일체다”는 말을 깊이 묵상해 봅니다. 삼위일체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추구할 이상(理想)이며 신자생활의 근본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매일 살아야 할, 신앙생활의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불화와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일치의 삶을 사는 것,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신자생활의 이상입니다. 성호경을 할 때마다, 영광송을 바칠 때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도록 다짐하고 그 은총을 구해야 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