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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 되게 하소서 (17,20~26 )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6 조회수346 추천수3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보는 요한복음 / 도반 홍성남 신부

 

 

 

요한복음 17,20~26

 

믿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의미 중 하나는 소속감이다.

1. 소속감

인간은 고립된 존재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속이 없는, 즉 갈 데가 없이는 건강히 살 수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 다른 사람에게 수용되기를, 즉 남이 나를 받아주기를 원한다.

어디를 가든지 나를 알아주면 기분이 좋고 살맛이 나는 것은
이런 쾌감을 주는 이유는 소속감 때문이라고 아들러는 얘기한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어떤 집단에 들어가려고 하는 소속되려는 욕구는

 

어렸을 때 가족의 구성원이었던 것이 성장하면서
또 다른 가족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져서
자기가 가족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든다고 한다.
내가 어른이 되어 직접 무엇인가를 창조하려하는 것이다.
슈츠(Schuzt)가 사람이 어떤 조직에 들어가려는 것은
3가지 욕구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소속욕구, 통제욕구(권력욕구), 그리고 애정욕구이다.
소속욕구는 어디에 소속되어 마음에 안정감을 갖고
그 소속체가 내 브랜드를 높여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통제욕구는 어떤 조직체에 들어가면 권력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애정욕구는 어느 곳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곳으로부터 애정을 받기 때문에 소속감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이 소속감이란 것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이 나를 받아들여주시기를 바라는 소속감이
하느님과 내가 하나가 되려는 욕구와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어느 조직체에 들어감이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친밀감이 형성되고
다른 사람이 나를 받아주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은가?
인간이 인간을 받아주는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놀이라고 한다.
같이 놀면 되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행해야 될
행동의 필수요건 중에 하나라고 얘기한다.
아동심리학에서는 아이들은 어디서나 놀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어떤 상황이든지 놀이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놀이들이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을 정화시키는 학습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푼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집에 와서 인형에게 주사놀이를 하면서 푼다.

놀이는 사람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학습역할을 한다.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실수를 하고 놀이이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서 용서받으면서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능력을 개발한다.
이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끼리 놀이를 해야 상대방에 대한 편견이 줄어든다.
남자들이 술자리를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술을 먹고 유아적이 되어 어린 시절의 놀이판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응석도 부리고 야단도 맞으며

서로간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어떤 놀이이건 간에 놀이를 통해서
가장 사람과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는 강도가 강해진다고 한다.


2.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려면
내가 내 자신 안으로 들어가야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과도 하나가 된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 요소를 파악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도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의식에만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면 합리주의자가 된다.
사람은 무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살기 때문에
사람이 합리적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고 어떤 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자기가 행동을 하면서도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의식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긴 자기내면탐색작업이라고 한다.

우울증상은 치료하는 데는 5~6개월 정도면 되지만
그 밑에 있는 그 증상의 오랜 시간을 통해 생긴 뿌리를 치료하려면
자기 안으로 들어가 탐색을 해야 되는데
그 밑으로, 밑으로 들어가면 성장과정을 만나고 결국 부모를 만나게 된다.

이런 장기적 치료과정이란 것이 사람의 영성수련과 흡사하다는 것을 융이 발견했다.
사람은 의식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과 함께 사는데

무의식에는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 그리고 영적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융이 아빌라의 데레사 얘기를 하기도 했다.
신앙생활, 즉 영성생활은 자기 자신 안의 내면 탐색이다.

우리는 내가 하는 행동이 죄가 되느냐, 아니냐 하는 단죄에 습관이 되어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좋은가, 나쁜가로 보기 때문에 제대로 자기 안으로 못 들어가고

들어가다 분노, 질투 등을 발견하면 놀라서 튀어나와
안 그런 척 살기 때문에 겉꾸미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나오게 되면
외적인 형식 특히 그 중에서도 전례나 기도모임들에 집착하게 된다.

집착하는 이유는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다.
그 곳이 동굴과 같이 어두컴컴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니까 회칠한 무덤 같은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다.

내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루 중에 한적한 시간을 만들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즉 무의식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것이다.
기도하라는 것이 영성생활이다.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자기 때가 있다.

자기 때가 와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을 닥치게 된다.
자기에게 역경이 닥쳐왔을 때 자기내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돈도 없고 힘들 때 갈 때가 없을 때 하느님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찾는 그 순간부터 자기내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하느님은 고통중에 은총을 주신다고 했다.
부자청년이 따라나서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 말씀에 안 되겠다고 한 것은 피상적인 삶에 만족한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세계로 오라고 했더니 못 들어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초대받은 자는 많으나 뽑힌 자는 적다고 하신 것도
초대에 응했는데 끝까지 그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은 극히 적다는

이다.

심리학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어떤 부름에 이미 응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너무 두렵고 힘들어서 그냥 산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마음을 잘 이해해야 자존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생겨야 자기인생을 행복하게 만들며 살 수 있다.

 

 

 

 

 

 

 

 

 

 

자료출처 : 도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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