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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성호경으로 삼위일체를/신앙의 해[18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6 조회수375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배티]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 외부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초기 교회 때부터 이어져 왔다.
삼위일체 대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였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어느 날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하여 묵상하며 백사장을 걷고 있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모래성을 쌓고는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열심히 퍼 담는 것을 보게 되었단다.
성인께서는 ‘이 아이와, 삼위일체 하느님을 머리로 이해하겠다는 내 자신 중
누가 멍청한 자인가?’라고자문했다나.
그만큼 삼위일체 하느님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리라.

하루에 몇 번이나 십자 성호를 긋는지 세어 본 적이 있는지?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십자 성호를 긋는 횟수가 많을 게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에도 성호를 긋는다. 마칠 때도 그을게다.
초대 교회 때부터 형식은 조금 달랐지만 십자 성호를 긋는 관습은 있었다.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십자가의 은총을 우리 안에 새기는 행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며 그분 사랑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십자가의 은총으로 힘을 얻어 삼위일체이신 그 사랑의 하느님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겠다는 다짐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요한 16,12-15)’
 

삼위일체는 사랑의 신비이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삼위일체의 ‘단일성’과
‘다양성’을 안단다. 그 ‘단일성’을 이해하고자 남녀 사이의 사랑을 생각해 보자. 처음에
서로 남남이었으나 서로를 알면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 안에 머무르고,
사랑이 깊어지면서 서로 닮는다. 그러면서 더는 둘이 아닌 한 몸을 이룬다. 성부, 성자, 성령의 단일성은 바로 이런 사랑에 비추어 볼 수 있다. 서로 너무나 사랑하여 완전한
일치의 공동체를 이룬 거다. 이와 견주어서 하느님이 세 분이 아닌 한 분이라신다.

또한 그 ‘다양성’은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에서도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어머니 배
속에서 하나가 된 상태이다. 그러다가 아기로 태어나 자라면서 조금씩 그 거리가
멀어진다. 배 속에서 품속으로, 품속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다른 지역으로 점점
멀어진다. 이렇듯 부모 자식은 처음에는 온전히 하나였다가 사랑이 성숙되면서
각자의 삶으로 나눠진다. 삼위의 하느님이 서로 간 사랑하신 게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 게 아닌, 오히려 서로를 인정한 ‘다양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를 성호 그음으로 매번 고백한다.

이처럼 삼위일체는 사랑의 신비이다. 남녀의 사랑처럼 서로 다른 위격이 온전히
하나가 된 것이며, 부모 자식의 사랑처럼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는 사랑이
곧 삼위일체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삼위일체의 신비, 곧 사랑의 신비를 살아가도록
초대받았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십자 성호를 그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삼위일체를
고백한다. 그때마다 성삼위이신 그분과 하나 되는 연습으로 어느덧 ‘나’는 없어지고
‘사랑’이신 그분만 남는다. 날마다 수없이 바치는 ‘성호경’을 통해 내가 온통 사랑으로
존재될 때 그분과 내통되는 진정한 내가 완성될 게다.
삼위일체 대축일인 오늘 만이라도 그분을 향한 형식이 아닌 성호경을 그으면서
보여주는 신앙이 아닌 온전히 그분께 봉헌하는 ‘나’가 되어보자.
그러면 이 오늘이 내일 또한 그분과 하나 되는 이 오늘이 될 게다. 이게 사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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