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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6 조회수850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5월 26일 삼위일체 대축일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 have much more to tell you, but you cannot bear it now.
But when he comes, the Spirit of truth,
he will guide you to all truth.
He will not speak on his own, but he will speak what he hears,
and will declare to you the things that are coming.
He will glorify me,
(Jn.16,12-14)


제1독서 잠언 8,22-31
제2독서 로마 5,1-5
복음 요한 16,15-21

어제는 인천대신학교에서 성모님 찬미의 밤이 있었습니다. 노래로 함께 한 저녁 성무일도, 훌륭한 강론이 있었던 말씀의 전례, 감동을 주었던 로사리오 행렬, 그리고 우리의 것들을 내려놓는 봉헌의 예절로 이루어진 성모님 찬미의 밤이었지요.

사실 이번 성모님 찬미의 밤은 신학생들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와 본당 성소후원회 임원들을 초대해서 함께 기도하는 자리였습니다. 처음으로 행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는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리를 만들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신학교의 교수신부님들과 신학생들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참 많이 준비했습니다. 또한 신학생들과 함께 기도한다는 마음으로 200여분의 교구와 본당의 성소후원회 임원들이 찾아와주셔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소국에서도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하나의 아름다운 전례를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름다운 성모님 찬미의 밤은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지, 자기 혼자 잘 났다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기를 바뀌기보다는 남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치하지 못하고 서로 비방하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오늘 기념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완전한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 사랑의 친교 안에 우리를 초대하고 계심을 경축하는 날이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 사랑의 친교 안에서 우리 역시 하나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따로 분리되어 활동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하나를 이루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북돋워주면서 활동하십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하나를 이루는데, 우리는 과연 어떠합니까?

사실 하나를 이루면 어렵고 힘든 것들도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남이 아닌 나를 드러내려는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 없이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은 어떤 일치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묵상해보셨으면 합니다. 하느님과의 일치, 가족과의 일치, 이웃과의 일치. 그 밖의 많은 일치들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을 드높이고 향상시키는 이들은 비난보다 격려하는 사람들이다(엘리자베스 해리슨).


어제 신학교에서 있었던 성모님 찬미의 밤.


 

까마귀의 울음소리

까마귀가 씩씩거리면서 어디를 가려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비가 물었지요.

“어디 가는 중이니?”

그러자 까마귀는 억울하듯이 말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내 목소리가 듣기 싫다면서 미워해. 재수 없다나? 그래서 아이들까지도 나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욕해. 이렇게 나를 반기지 않는 이 마을에 계속 남아 있을 수가 없지 않겠어? 그래서 내가 다른 먼 곳으로 가려고 해. 다른 마을로 가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그러자 제비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울음소리를 바꾸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도 똑같지 않을까?”

그렇지요.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는 것이지, 까마귀 겉모습을 보고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그 싫어하는 모습을 바꾸지 않는 한 절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을 지적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를 낮추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과 일치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나의 이웃들과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남에 대한 잘못 지적 없이 하나를 이루면서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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