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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소금인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6 조회수848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삼위일체 대축일


<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복음: 요한 16,12-15






 삼위일체


 엘 그레코 작, (1577), 캔버스유화, 300 x 179,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소금인형 >

          한 의사가 아프리카의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외국에서 선진 축산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마을의 젊은 청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었는데, 청혼을 할 때 남자가 암소를 끌고 처녀의 집에 가서 암소 받고 딸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등 신부감에게는 암소 세 마리, 괜찮은 신부감은 암소 두 마리, 그리고 보통의 신부감이라면 암소 한 마리로도 승낙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의사는 이 청년이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 둘러싸여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청년이 몰고 나온 청혼 선물은 살찐 암소 아홉 마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면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마을 촌장 집도, 지역 유지인 바나나 농장주인집도, 마을 여선생의 집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더니 어느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 노인에게 청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의 딸은 큰 키에 비해 너무 마르고 심약해 보이는 초라한 여자였습니다. 암소 한 마리에 청혼할 상대에 불과한데 암소 아홉 마리를 데리고 간 것을 보고 동네청년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린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의사는 의료봉사를 마치고 본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휴가차 다시 그 마을을 찾아간 의사는 큰 사업가가 되어 있는 옛날의 그 청년을 만났고,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의사는 그에게 청혼 선물로는 과도하게 암소 아홉 마리를 건넨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빙긋 웃을 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궁금증만 더 커져갈 즈음에 찻물을 들고 한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흑인 여인이었습니다. 유창한 영어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미소까지, 의사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그 때의 말라깽이 처녀 말고 또 다른 아내를 맞이했구나,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이 사람과 어울리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사업가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이 그때 제가 청혼했던 처녀입니다.”

의사의 놀란 모습을 보고 사업가는 말을 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고 저 사람과의 결혼을 꿈꿔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마을에선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여자들의 세계에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저도 그런 관습을 무시할 수 없어서 암소를 몰고 갔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한 마리의 암소면 충분히 혼인 승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사랑한 여인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한 마리의 암소 값에 한정하고 평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을 두 마리나 세 마리를 받았던 처녀들과 비교하면서 움츠려져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청혼 때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평생 동안 자기 가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세 마리를 훨씬 뛰어넘는 아홉! 마리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척 놀라 하던 아내가 차츰 저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암소 아홉 마리에 걸맞은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내는 더욱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져 갔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암소 아홉 마리를 끌고 갔던 이유였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선물에 자기 존재를 담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삼위일체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선물을 받아들이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물에는 주는 사람의 존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당신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맡기셨다고 하시며, 또 당신 을 아버지 손에 맡긴다고 하십니다. 즉 아버지의 모든 것인 성령님을 통해 아드님 안에 들어오시고, 아드님은 또 당신의 모든 것을 성령을 통해 아버지께 맡기며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지 못하겠느냐?”라는 말씀으로 이해되게 됩니다.

500년 전 멕시코 현 과달루페라는 곳에서 성모님이 인디언 후안 디에고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모님은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고 당신 뜻에 순종하는 후안 디에고에게 주교님께 가져다주라고 꽃을 옷에 담아 줍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당신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후안디에고의 망토에 새겨졌습니다. 후안 디에고의 아무 가치 없었던 망토는 이제 후안 디에고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눈을 확대해 보니 후안 디에고를 바라보시면서 눈망울에 새겨진 디에고의 얼굴이 비치고 있습니다. 즉 당신을 디에고에게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후안 디에고를 당신 안에 넣으신 것입니다. 후안 디에고는 자신을 버린 순종으로 성모님 눈에 든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인 것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한다면 인간관계의 모든 것, 아니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관계가 삼위일체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이 만드시고 당신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들려드린 일화에서 암소 아홉 마리는 신랑의 전 존재를 의미합니다. 신랑은 암소와 함께 신부 안으로 들어가고 신부는 그렇게 신랑에 걸맞은 여인이 되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당신 선물인 성체로 그분을 받아들이면서 썩을 인간인 우리가 하느님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핵심은 나를 어떻게 상대에게 보낼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아드님을 위한 선물이 되신 것은 성령님을 통해 내려오신 것이고, 아드님도 우리 안으로 오시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마치 당신이 보내신 성령님을 통해 성모님 안에 잉태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다시 성령님을 보내드리는 것이 십자가 죽음 때임인 것처럼 나 자신이 선물이 된다는 것은 곧 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선물이 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전부를 주는 것이 완전한 사랑인데 나의 목숨까지 주지 않는다면 항상 불완전하게 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류시화씨가 시를 쓰고 안치환씨가 부른 소금인형이란 노래를 아십니까?

 

바다의 깊이를 재기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알기위해, 나는 나는...

당신의 핏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이 시는 본래 이런 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바다를 알고 싶어 하던 소금인형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에게 물어 보았죠.

너는 누구니???”

바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알고 싶다면 너의 발을 나에게 담그렴.”

바다를 알고 싶어 하던 소금인형은 바다에 발을 담급니다. 그리곤 바다에 서서히 녹아 갑니다. 얼마 후, 바다가 물었습니다.

소금인형아, 너는 누구니?”

소금인형이 대답합니다.

나는 바다야....”

 

사실 소금이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닙니다. 소금인형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바다입니다. 또한 소금인형이 녹지 않으면 바다를 바다로 만들지도 못합니다. 소금인형은 바다가 아닙니다. 그러나 바다에 자신을 녹였기 때문에 바다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의 핵심나를 죽여 상대를 살리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원리가 삼위일체이고 이것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원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빵의 모양으로 와 우리 몸에 녹지 않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삼위일체를 살지 않는 것이 곧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 삼위일체의 영원함에 참여하기 위해 누군가의 핏속으로 뛰어들어 녹아버리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결론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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