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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위일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 2013.5.26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6 조회수43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5.26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잠언8,22-31 로마5,1-5 요한16,12-15

 

 

 


삼위일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신록의 아름다운 성모성월 5월, 주일마다 계속되는 대축일입니다.

지난 주 성령강림대축일에 이어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대축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입니다.

 

“주의 이름 온 세상에 그 얼마나 묘하신고.”

 

화답송 후렴처럼 사랑의 하느님은
오늘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활짝 자신을 개방하셨습니다.

여기 수도자들은 오늘 새벽, 성령 충만한 분위기에서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마음으로 성부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수도원 주차장 숨 막힐 듯 황홀하게 만발한 이팝나무 꽃들
성령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라고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불행하게 사는 이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가 아닌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살지 못하면 앞으로도 못삽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살고 있음을 깨달을 때 샘솟는 행복에 기쁨입니다.

온 누리에 가득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안에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신비의 깊이는 무궁무진 합니다.

죽어 화석화된 삼위일체교리가 아니라
체험적 사랑의 삼위일체 하느님 고백입니다.

그러니 삼위일체 교리는 그대로 삼위일체 하느님 체험의 반영입니다.

 

오늘 독서의 잠언에서는 현자의,
2독서의 로마서에는 바오로의,
복음에서는 요한의 삼위일체 하느님 체험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입니다.

 

살아있음이 하느님 체험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입니다.

생명은 사랑입니다.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는 생명과 사랑입니다.
하느님 역시 삼위일체 공동체입니다.

불통은 죽음이요 소통은 생명입니다.

고립단절이 죽음이라면 연대로 하나 될 때 생명입니다.

 

흡사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으로 이뤄진 가정 공동체 같습니다.

다르면서도 소통으로 하나가 된 삼위일체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약속대로 성령께서는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이끌어 주시어
삼위일체 하느님 신비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시고,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받아
삼위일체 하느님의 진리 모두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바로 요한의 삼위일체 하느님 체험의 고백입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부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성자를 통해 하느님의 진리를 받아 그대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성령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공동체의 공존과 조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의 원형입니다.

말 그대로 화이부동(和而不同), 평화로우나 같지 않은
다 고유의 위격을 지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총과 성령의 친교가
우리 공동체를 생명의 빛 가득한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을 닮게 합니다.

실제 공동체 생활이 아니곤
삼위일체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생명의 신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충만의 하느님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믿음, 사랑, 희망을 통해서도 아름답게 들어납니다.

성부의 믿음, 성자의 사랑, 성령의 희망입니다.

 

나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신망애 삼덕의 삼위일체 구조입니다.

믿음의 뿌리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사랑이요
신록으로 빛나는 희망의 나뭇잎들입니다.

다 다른 것 같지만 셋이자 하나인 나무에 속한 실재들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 뿌리 둔 믿음, 사랑, 희망입니다.

이 향주삼덕이 충만한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고
리 또한 충만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 향주삼덕의 은총이
우리의 불신을 믿음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바로 오늘 로마서의 바오로가 신망애 삼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믿음에 이은 희망입니다.

이어 희망의 근원은 바로 사랑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참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그 무슨 환난도, 인내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믿음-희망-사랑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시스템 안에서
순화되고 정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이들은 믿음-희망-사랑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삼위일체 향주삼덕의 시스템 안에 살아갈 때 충만한 삶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성령을 통해 우리 모두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고자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개방의 하느님입니다.

 

사랑은 개방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사랑 정도만큼 개방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의 자기방어 본능이 우리 마음을 닫게 합니다.

사랑의 빛이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떠오르는 태양에 활짝 꽃잎을 연 꽃들이 바로 사랑은 개방임을 보여줍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 눈높이에 맞춰 누구나 터치할 수 있도록 개방하십니다.

영적 수준 높은 관상가에게는 성부 하느님으로,
오관을 중시하는 토마스 같은 이들에게는 성자 예수님으로,
또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어디에나 계신 사랑의 성령을 통해 당신을 터치하게 하십니다.

 

온 누리 누구에게나 개방하시는,
언제 어디서나 체험할 수 있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나보다도 더 나에 가까이 있으신 분입니다.

 

“주님을 찾아라.
만나 주실 때가 되었다.

그를 불러라.
옆에 와 계신다.”

 

이사야의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어 생각나는 진선미(眞善美)의 삼위일체 구조입니다.

 

진실하신 진(眞)의 성부 하느님,
좋으신 선(善)의 성자 예수님,
아름다우신 미(美)의 성령님으로 개방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모든 피조물을 통해
우리는 진선미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우리 또한 하느님을 닮아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주님의 자녀로 변모되어 갑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교리는 하나 어렵지 않습니다.

 

너무나 자명하게 체험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향해 활짝 개방하신 하느님의 충만한 생명과 사랑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고백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숨 쉬며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다음 의인화된 지혜는 성자 예수님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나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 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주님은 성령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믿음과 희망, 사랑의 신망애 삼덕을, 참됨과 좋음과 아름다움의
당신 진선미의 마음을 가득 선사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좋은 영광송과 성호송 기도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합시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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