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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버림과 따름 - 2013.5.27 연중 제9주간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7 조회수64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5.27 연중 제9주간 월요일 집회17,24-29 마르10,17-27

 

 

 


버림과 따름

 

 


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여자들은 모이면 온통 남편과 자식이야기입니다.”
어느 자매의 말이 생각납니다.

 

“진짜 시인은 늘 시만 생각한답니다. 자나 깨나 시를 생각하면 시가 온답니다.”
어느 시인의 말도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수도자는 무엇인가?

자나 깨나 하느님을 생각하는 자가 수도자이며
온통 하느님 이야기를 하는 자가 수도자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그를 찾아오십니다.

 

오늘은 ‘버림과 따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버림과 떠남’이 아닌 ‘버림과 따름’입니다.

오늘 부자의 경우 바로 ‘버림과 따름’이 감쪽같이 빠져있습니다.

 

계명의 나무들은 봤지만 주님의 숲은 보지 못했습니다.
외관상 흠잡을 데 없는 착실한 신자임은 분명하지만
주님 목표의 지향을 잊어버린 타성(惰性)에 젖은 계명 준수의 삶이었습니다.

 

하여 부자는 목이 말라 주님을 찾았습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전 구도자들이 사막의 장로들을 찾아 물었던 공통적 질문입니다.

‘버림과 따름’이 결핍된 것을 예리하게 간파하신
영혼의 명의(名醫),
주님의 처방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부자에게 처방은 재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 이것 하나뿐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사막의 안토니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 말씀에 곧이곧대로 순종했습니다.

과연 나에게 부족한 것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똑같이 ‘자기(ego)’입니다.
자기 소유욕을, 자기 성욕을, 자기 뜻의 욕구를 버리는 것입니다.

 

하여 가난과 정결과 순종의 복음적 권고입니다.
정도나 양상의 차이일 뿐 버림과 따름은 회개의 내용을 이룹니다.

 

끊임없는 버림과 따름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의 정주는 안주가 되어버립니다.

 

바로 내적으로 끊임없는 버림과 따름의 삶이
바로 우리의 둘 째 서원인 수도자다운 생활입니다.

 

제자리에서 무의미한 수행의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안팎으로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역동적 삶이 바로 정주의 삶입니다.

 

자기 중력의 힘은 얼마나 큰지요.

부자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합니다.

 

주님보다 재물이 인력이 컸던 탓입니다.
주님의 처방은 맞았지만 부자는 그 처방을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주님을 찾았기에 그래도 답을 찾은 부자입니다.

아마 부자는 주님의 이 말씀이 화두가 되어
그 후 언젠가 회개하여 주님을 따를 지도 모릅니다.

 

회개의 내용을 이루는 버림과 따름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시스템과도 같은 일과표에 따라
하루에도 일곱 번씩 성전의 주님께 돌아와 버림과 따름을 점검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회개는 어둠에서 구원의 빛인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은총의 힘으로 자기 중력을 벗어나 주님께로 나와
버림과 따름의 삶을 새롭게 정립하는 게 바로 회개입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충실히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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