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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기는 이만이 섬김을/신앙의 해[18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9 조회수376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한티] 피정의 집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예수님 곁에 가장 가까이 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거치시지 않고 그곳에 가시리라
기대했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그 엄청난 고통이라는 대가 없이 남들보다 큰 존경과
명예를 누리려던 것일 게다.

교회에서도 여러 분야에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다. 그들의 수고와
봉사는 대부분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일 게다. 그러나 명예와 존경을
받고자 직책을 맡는 경우도 있으리라. 닭 벼슬만도 못한 게 교회에서 맡은 직책이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봉사는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 보여 주신 그 낮은 자세여야 한다.
 

제자들 가운데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자신들이 그분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주십사고 청하자,
다른 열 제자가 불쾌하게 여기며 화를 낸다.
자리를 청하는 그들이나 화부터 내는 제자들이나 자리 연연은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모든 걸 다 버렸다지만 실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던 걸까?
그러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당신께서 겪으셔야 할 수난의
이야기를 들려줘도 그들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으리라.
그들은 받게 될 영광에만 집착할 뿐, 져야 할 십자가는 염두에도 없었다.
우리 옛말에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말이 꼭 맞는 꼴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본다.
기꺼이 주님께 봉사하겠다면서 자존심을 앞세우고는 자리다툼이다.
예수님께 가까이 있고 싶어서 봉사를 한다면 그 방법은 간단할 게다.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닌 내리서면 된다. 섬김을 받는 이가 아닌 섬기면 될 게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제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신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이 바뀌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새 세상이 시작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승님의 죽음이 종말의
시작으로 본 게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의 양 옆에 있게 해 주십사 청한다.
모르기에 그렇게 말한 것일까? 그냥 스승님과 함께라면 생각에서 그렇게 말했을 게다.
그렇지만 다른 제자들은 예민한 반응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즉시 진화에 나서시며,
섬김에 대해 일러 주셨다. 높은 이가 되려면 먼저 ‘섬기는 이’가 되라는 게다.
지극히 평범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게 엄청나게 어려울 게다.

섬기는 건 마음먹는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닐 게다. 실제로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스승님은 당신을 기억하며 그렇게 하라신다.
주님을 생각하며 자신을 낮추란다. 그러면 실수했을 때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으로 그렇게 하면 이웃도 하늘도 감동하리라. 그런 사람은 아랫사람은 물론,
어린이에게도 사과할 게다. 자신을 낮추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풍성해졌기에. 주님이 분명 ‘삶의 여유’라는 선물을 안겼기에.
 

섬겨야 할 이가 많은 건 결코 아니다. 가까운 가족부터 섬기면 될 게다. 도움을 준 이도
대상이다. 출세를 위한 억지 섬김이 아닌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축복이 온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훗날 요한과 야고보 사도로 불린다. 그들은 스승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는 새로운 나라가 곧 오실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기에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달라는 거다. 어이없는 청원에 예수님은 조용히 설득하셨다.
아직은 믿음이 깊은 그들이 아님을 아셨기에.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 한 사람이 물동이를 머리에 인 채 손에는 등불을 들고
우물가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마주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단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군! 앞도 못 보면서 등불은 왜 드는지?” 이 말을 들은 그는
대답하였다. “이 등불은 당신을 위한 겁니다. 댁이 나와 부딪치지 않게요.”

누군가를 섬기면서 배려하도록 자신을 변화시키는 건 참으로 어렵다. 왜냐면 때로는
비난받고 자존심 상하며 바보 취급을 당할 수도 있기에. 그러나 그러한 섬기는 자세가
궁극적으로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섬기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게다. 이것이
신앙의 해를 보내는 믿는 이의 바른 삶이리라. 섬김을 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 섬겨야 한다. 섬기는 이만이 섬김을 받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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