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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문 (18,28~38)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9 조회수440 추천수5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보는 요한복음 / 도반 홍성남 신부

 
 

 

 

 

 

요한복음 18,28~38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처형할 권리가 있는 빌라도에게 데리고 가서 죄인임을 증명하려했다.
빌라도가 네가 유다인의 임금이냐고 물었더니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이 대목에서 심리학적 관찰해 볼 것은 심문에 대한 것이다.
 

-심문
내가 남들에 대해 집요하게 심문하는 것이 타인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심문할 때가 있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증오라고 한다.

왜 그거밖에 못했어, 왜 점수가 그것밖에 안 돼?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심문하는 것이다.
자기심문은 자기증오와 연관이 있다.

이 자기증오 중에서도 만성적인 자기증오가 있다.
요즈음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기 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그런 일을 당한 분들이 자기 자신을 질책을 한다.
이런 만성적 자기증오를 하는 사람들은

마음 안에 늘 열등감이 떠나지를 않는다.
내 마음 안에 나를 못 미더워하고 미더워하는 느낌이 있다.
미덥다, 못 미덥다, 즉 신뢰와 불신에 관한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거나 믿지 못하는 것 같이

내가 나 자신에게도 똑 같이 나타난다.
일을 하면서 이것이 제대로 될까 하면서 일을 한다.
자기 자신을 못미더워하는 만성적 자기증오가 몸에 밴 사람들이 있다.

너는 하는 것이 왜 그 모양이니, 하면서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는 것은
내가 못미더워하는 만성적 자기증오가 작용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내 몸 속에 들어와 있는 자기증오의 구조들은 데리고 살다보면
나중에 그것이 내면화(자기화)되어 그렇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자기를 증오하는 작용은
어린 시절부터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매우 능동적이라고 얘기한다. 만약에 제어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심장의 고동이나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없이 똑같이 자동기능을 그대로 계속한다.

자기증오의 기능은 내가 나를 하루 종일 매번 끊임없이 심문한다.
그렇게 심문을 당하다보면 나중에는 그 자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자기보다 약한 다른 사람들을 심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비하를 시키든 이상화를 시키든 어떤 식으로든
자아를 왜곡시키는 행위는
실질적인 자아를 거부하는 결과적으로 자기를 증오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자기증오감이 큰 사람들은 인생살이를 사는데 못난 선택을 많이 한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가다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하면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쪽으로 가 또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선택에 있어서 내가 밝은 눈을 가져야하는데
사람이건 대상이건 이것이 내가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좋은지 안 좋은지 봐야 되는데


 

자기증오가 많은 사람들은 흐린 눈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해 늘 사기를 당한다고 한다.
꼬이는 인생을 사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자기증오감이

자기인생을 계속 꼬이는 쪽으로 선택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왜 자기가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가?
그 시작이 어디부터인가?
자기관찰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거울을 보고 자기를 관찰하며 산다.
자기가 자기를 관찰하고 자기를 비판하는 능력은 사람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다
이 자기를 관찰하는 능력과 더불어 관찰한 것을 기억하는 기억력이 있다.

자기증오라는 것은 시작이 자기가 자기를 관찰하면서 시작되는데
내가 관찰하는 것은 좋은 능력인데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 자기를 보면 자기증오감이 일어난다.
자기를 관찰할 때 너 왜 그렇게 못났냐는 마음을 일으키는 원인은

일차적 책임은 타인에 의해서인데
그것은 부모라고 한다.
부모가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불균형한 성격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은 외부로부터 받는 영향에 민감하다고 한다.

외부사람들이 아이에게 보여주는 말과 표정에 민감하다
어른이 되어 나이를 많이 먹어도 그렇다.
그런데 어린 아이 때에는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주눅이 든다.

나한테 인상을 쓰는 사람이 절대적인 힘과 돈을 갖고 있는 부모였을 때에는
부모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아이들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렇게 부모가 미워하면 아이가 떨어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에게 더 많이 매달린다.
어떻게든 인정받으려고 인생살이가 불쌍하게 된다.

어른으로 성장을 못하고 나이가 먹어도 끝까지 애가 된다.
어른이 되면 자아의식이 자기 자신에 대해 혐오를 불러일으켰을 때 그리고 자기패배의식이 생긴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던져주는 말 한마디, 표정이 중요하다.
한 마디 던져준 것이 어른이 되어 자동적 구조가 형성되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심문하게 된다.
가톨릭의 양심성찰이 다루기에 따라

부작용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 기제이다.
양심성찰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보고
성령이 나에게 이런 문제를 보여주셨다는 인식을 갖고
이제부터 고쳐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양심성찰이 좋다

그런데 양심성찰이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어버리면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더 멀어진다.
양심성찰을 하도록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받는 사람들이 건강한 죄의식을 가질 수 있고
 

 

아니면 병적인 죄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죄의 죄책감까지도 해소시켜주어야 되는 것이 사제들의 일이라고
조규만 주교님이 심리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한다.
 

가톨릭교회는 비교적 윤리적으로 건전한 사람이 모이는데
 

속으로는 병들어 있는 사람이 많다.
신자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신앙생활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인데

우리 신자들은 죄를 안 짓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하는 것이다.
죄를 안 지으려고 버둥거리는 삶은 안 즐겁다.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혐오감을 갖는 것은 막아야 한다.

자기혐오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외적생활은 경건하고 엄격하게 하지만 내면생활이 황폐화되어간다. 활기가 없다.
자기증오감이 많아서 그렇다.

마음이 자기증오를 하면 몸이 똑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신체화증상이 일어난다.
신체적으로 자주 신경성병을 앓는 사람들이 자기증오감이 높다고 한다.
내가 내 자신을 미워하게 되면 온 몸이 아프다.

내가 아이들을 미워하면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건강한 사람들은 아픈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관찰할 때 조금 따뜻한 눈으로 봐주어야 된다.
거울을 보고 따뜻한 눈으로 봐주는 그런 훈련을 해야 한다. 

                                                 

    

자료출처 : 도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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