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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상위 0.1%는 스스로를 낮춘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9 조회수924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8주간 수요일


<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


복음: 마르코 10,32-45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1661)


     < 상위 0.1%는 스스로를 낮춘다 >

            한 마을에 존 부스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한 형과 비교를 당하며 자랐고, 부모님께 야단을 맞을 때면 늘 나는 못나서 그렇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형은 매사에 일을 잘 처리하는 모범생이었고 나중에 아주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항상 그런 형에 대하여 많은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늘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아주 유명한 사람을 죽이면 나도 유명해지겠지?’ 그래서 그가 죽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주저함 없이 링컨 대통령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한 시대가 낳은 훌륭한 위인을 죽였던 그 청년의 동기는 바로 명예에 대한 어이없는 탐심이었습니다. 이는 남의 명예를 밟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우리 안에 있는 권력욕의 원죄를 잘 보여줍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느님께 순종하여 낮아짐이 아닌, 불순종을 통해 하느님 밑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못나서 그렇다는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그 앞에 나는 더 잘났어야 하는데라는 말이 생략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잘난 것을 드러내기 위해 사고를 치고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가 명예를 요구합니다. 오늘 더 주위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다른 사도들의 태도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도들은 화를 냅니다. 그 이유는 이 형제들이 요구한 자리가 은근히 자신들이 요구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누구도 나를 높여주기를 원치 않습니다. 모든 이들 안에 높아지려는 원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를 높여주고 있다면 자신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축구 경기를 이겼을 때 우리가 환호하는 것은 그 축구선수들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높아진 우리 자신들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 시저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온 세계를 정복한 로마의 전성기였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손을 흔들며 열렬하게 환호했습니다. 이때 카이사르는 번쩍거리는 면류관을 벗으면서, ‘겨우 이것이 전부냐? 도대체 이게 무엇인데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생명을 바친단 말이냐?’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의 겸손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고작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걸었는가?’하는 불만족스런 한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1인 지배체제가 아닌 공화정 정치체제를 뒤엎고 1인 황제체제로 자신이 모든 로마권력을 쥐기를 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로마의 권력이 그에게 있었음에도 외적으로 모든 권력과 영예를 혼자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는 시저를 환영했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자신 혼자 더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기를 원치 않는 원로원들은 시저를 암살하게 됩니다.

누구나 남에게 인정받고 높아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보다 높아지려고 하거나 인정받으려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것이 빼앗기는 것 같아서 그 사람을 어떻게든 눌러 앉히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세상에서 명예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누구도 자신이 높아지고 싶지 다른 사람을 명예롭게 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슴이 노루나 다른 짐승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뿔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옛날 지구상에는 메가케로스’(megaceros)라는 거대한 뿔을 가진 사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슴들은 커다란 뿔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슴은 얼마 자나지 않아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자랑자부심으로 여겼던 커다란 뿔이 비극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 도망을 가야 할 때 넝쿨과 나뭇가지에 가장 걸리기 쉬운 것이 또한 그 뿔이었기 대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그 뿔 때문에 추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사슴은 알고 있었을까요?

 

모든 사람 안에는 교만이라는 원죄가 있습니다. 인정받고 높아지려는 명예욕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인정받지도 못하고 높지도 않다는 자존감의 상실에서 옵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잘났어도 못났어도 사랑스러운 자녀일 뿐입니다. 하느님께 우리도 그렇습니다. 괜히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높이려는 이유는 그만큼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 TV를 보니 우리나라 0.1%의 큰 부자 자녀들은 두 부류로 나뉜답니다. 첫 째는 벼락부자가 된 어설픈 부자들로써 비싼 것들로 매우 사치스럽게 자녀를 키운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전통적인 부자들인데 이들은 자녀들이 부자로 보이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허름한 옷차림과 돈도 주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얻어먹게 한다고 합니다. 굳이 자신의 부를 자랑하여 자녀가 왕따 당하거나 유괴 등 나쁜 일 생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족한 것을 채우는 법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높은 하느님의 자녀라면 높아지려는 욕망은 없어야 옳습니다. 이미 부자인데 부자 티를 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높은 사람이 되려거든 섬기는 사람이 되고, 첫째가 되려거든 모든 이의 종이 되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이유는 더 이상 스스로 자신을 높여서 섬김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높은 분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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