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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과 무위자연, 그리고 행복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31 조회수70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축일


<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복음: 루카 1,39-56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조토(Giotto) 작, (1302-1305), 프레스코, 200x185, 파도바 아레나 경당


     < 믿음과 무위자연, 그리고 행복 >

            마를린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 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36세의 나이로 자신의 생일파티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실 축하를 가장 많이 받는 생일파티가 가장 외로운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래서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헛될까요? 바로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헛되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종말에서 나폴레옹이 그리스도와 자신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정복했지만 나의 왕국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예수는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사랑의 왕국은 날로날로 번져 가지 않는가? 그와 우리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영웅들과도 다르며 성자들과도 다르다. 이상한 일이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위대한 영웅들이라고 일컬어지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그랬고, 로마 황제 시저도 그랬으며, 징기스칸도 평생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도 의심스럽게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분을 따랐던 사람들은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을 하며 세상을 떠납니다. 다 이루었을 때의 행복, 그것을 왜 정복자들은 갖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 차이는 정복자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려 했고, 그리스도 왕국의 일꾼들은 자신의 뜻을 포기했던 것뿐입니다. 자신의 뜻은 신기루 같아서 이루고 나면 곧 사라져 공허함만 남게 됩니다.

 

저도 산 인생이 얼마 되지 않지만 평생 행복이란 것을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부모님의 장례를 지켜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이렇게 짧은 인생인데 행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습니다. 그 때 추구하려고 했던 것은, 명예, , 여자, 힘 등이었습니다. 처음엔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이 이제는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이 행복한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성령에 차서 당신은 참 행복합니다.”라고 말 해 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행복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성모님께 이렇게 외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그렇습니다. 저는 행복이 믿음에서 온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행복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내는 열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찬 엘리사벳은 믿었기에 행복하다고 합니다.

G. Becks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의 근원은 믿음이다.’라는 진리를 만 번 이야기 해줘도 안 믿으니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행복의 근원이 왜 믿음일까요? 믿음은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태어난 것처럼 관계를 맺어야만 온전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마치 삼위일체 하느님이 서로 관계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느님도 사랑도 행복도 아니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아버지를 믿으셨을까요? 아버지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받고 죽으라고 요구하시는데 어떻게 믿으셨을까요? 믿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믿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을 전제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관계를 통해 얻는 행복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믿으니 돌아가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행복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한 몸이 되신 것입니다. 그 분 안에 하느님이 계셔서 행복하신 것이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도 그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믿으면 행복한 것을 알면서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것은 우리 맘이 아직도 불신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이야기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저절로 다 된다는 뜻입니다.

이름 모를 병에 걸린 제후를 한 시골뜨기 의사가 척 보고 고치자 제후가 포상하려는데 그 의사가 마다하며 말합니다. 자기는 병인지 알고 고쳤지만 자신의 형은 병이 나기 전에 치료를 하여 환자들은 자신이 병이 났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병을 고치는 것을 인위(人爲), 혹은 유위(有爲)라고 합니다. 무언가 한다는 뜻입니다. 저도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느끼는 것은 공허함뿐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의사의 형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못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높은 경지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러나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내 안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에게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 안의 분이 모든 것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종이니까 어떤 행동을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하려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내 자신을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맡기고 자신의 뜻은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세상에 구원자를 오게 했습니다. 행복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 노력하는 나를 내려놓고 자신을 그분께 봉헌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외적인 행위를 멈추고 내적인 불신을 제거하고 성모님처럼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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