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1 조회수353 추천수2 반대(0)

새로운 한 달의 첫날입니다. 2013년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갑니다.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거나, 절망하기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절반의 날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6월 한 달도 주님의 사랑이 모든 분들에게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신문과 방송은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입니다. 사설, 칼럼, 논평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은 매일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를 알려주고, 그 사건과 사고의 이면에 있는 사회적인 의미를 알려줍니다.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줍니다. 다큐멘터리와 문화 예술 프로그램은 우리들의 지적인 호기심과 감성적인 목마름을 충족시켜 줍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은 결국 나의 선택에 의해서 정해집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식별의 지혜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기쁨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세상의 것들로부터 오는 것인지 식별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갈등, 근심, 고통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망 때문에 오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제는 잠시 마음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방에 개미와 날벌레들이 함께 있습니다. 산 속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손님이려니 생각하면 되는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순간 ‘서울에서는 그런 일들이 없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용문에서 누리는 많은 즐거움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바꾸어 친구로 생각하니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지금 집은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성당 앞에 빌라를 새로 지었는데 지금 집보다 조금 크고 엘리베이터도 있다고 하십니다. 지금 집을 팔아서 새롭게 분양을 하는 집을 사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 졌습니다. 지금 집을 전세를 놓고, 새로운 집으로 전세를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집을 팔고, 새로운 집을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결국은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일인지라 어디서 시작을 해서 어디서 마쳐야할지 몰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집으로 옮기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은행에서 융자도 해 준다니, 결국은 더 큰 집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식별의 기준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고통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망 때문에 오는 것입니까?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고통도 모두 받아들이십시오. 세상의 것들에 대한 애착과 집착 때문에 오는 것이라면 버려 버리십시오.

유대인들의 지도자는 식별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초대 교회의 이해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성서에서 말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서는 예수님에게서 대해서 4가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은 유대인들의 종교관습에 의하면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는 제물입니다. 그 유래는 모세의 출애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문지방에는 ‘양의 피’를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희생된 양의 피는 하느님의 재앙을 막아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희생된 양의 피를 보시고 건너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스카’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우리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어린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린양은 순결해야 하고,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흠이 없고 순결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에 걸친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유배생활은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낯선 곳에서 힘들게 벌어야 했고, 핍박과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전에 북간도로 떠나야 했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유배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참된 예배를 드릴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배가 끝나면 사막에 샘이 솟아나고,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춤을 출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난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는 반드시 하느님께서 보상을 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세 번째는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처럼 ‘사람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복음서를 보면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을 자주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무슨 뜻인가요?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모든 이를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참된 생명의 길을 알려 주시는 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유한한 틀을 깨시는 분이고, 모든 것을 정리해 주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요한복음 사가가 이야기 하였듯이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고, 말씀은 하느님이셨고,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아름답게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은 맨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생겨난 것치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엄청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전해주는 예수님의 4가지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은 한 없이 약하고, 순결하신 어린양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되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겸손함과 정결함,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고난과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한 구원자이시고, 그분이 걸어가신 길이 생명의 길이였으며, 그분의 권위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주어지고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또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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