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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혜로운 삶 - 2013.6.1 토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100-166) 대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1 조회수33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6.1 토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100-166) 대축일

 

집회51,12ㄷ-20ㄱ. 마르11,27-33

 

 


지혜로운 삶

 

-하루하루 주님과 함께 사는 삶-

 

 

 

대구가대 저희 1회 졸업생들의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하여 이렇게 따뜻이 환대해 주신, 또 저를 귀빈실에 묵게 해 주신 모교의 신학원 원장신부님과 교수신부님들, 그리고 후배 신학생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대구가대 1회 졸업생인 저는 서울 근교 불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이 수철 프란치스코 수사(신부)입니다.

요셉수도원은 1987년 3월19일 왜관수도원의 분원으로 설립됐고, 저는 1988년 6월, 대구가대를 졸업하던 그해 7.11일 ‘성 베네딕도 대축일’에 부임했으니 요셉수도원에 산 지 올해 만 25주년이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당시 저의 치열한 물음이었고 그 답을 25주년이 되면서 찾아냈습니다.

‘하루하루 살면 된다.’

바로 이게 답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며칠 전 고백성사를 보러 온 수녀님이 말씀사탕 쪽지를 선물했습니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보물,
지혜를 얻은 이들은 그 가르침이 주는 선물들의 추천으로 하느님의 벗이 된다.’
(지혜7,14).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도 ‘지혜’입니다.
집회서의 저자 역시 지혜를 추구할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복음의 예수님 역시 '지혜'로 그 위기를 벗어납니다.
정말 지혜보다 더 소중한 보물은 없습니다.

위 구절 중 ‘하느님의 벗’이란 칭호는 늘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이자 항구한 노력의 열매인 지혜를 얻어야
비로소 하느님의 벗이 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벗’, 얼마나 존엄한 품위의 인간인지요.
예수님도 요한복음에서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벗’이나 ‘친구’라는 말보다
불자들의 용어인 ‘도반(道伴:길벗)’이란 말을 더 좋아합니다.

얼마 전 창세기를 읽다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입니다.

창세기 5장 24절,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중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는 대목의 영역을 보니
‘Enoch walked with God(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걸었다)’ 로 되어 있었고,

창세기 6장 9절,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 중
‘그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 영역 역시
‘he walked with God(그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다)’로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에녹과 노아의 도반, 길벗이었다는 참 반가운 정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걷는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요 길벗입니다.

이런 도반이신 주님과의 대화가 기도요 이보다 더 큰 위로와 힘도 없습니다.
늘 우리의 배경이 되어 주시며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참 좋은 도반인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을 영원한 도반으로 할 때 지혜 자체이신 주님을 닮아
우리 역시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얼마 전 어느 소아정신과 의사의 인터뷰 기사 중
모든 부모들에게 말한 대목도 생각납니다.

 

“자식을 위해 살지 말고 자식과 함께 사세요.”

 

저는 즉시 ‘자식’대신 ‘주님’을 넣어 봤습니다.

‘주님을 위해, 주님 때문에 살지 말고 주님과 함께 사세요.’

 

이래야 주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주님 때문에 산다하면 주님도 아주 부담스러워하십니다.
주님은 절대로 나를 위해, 나 때문에 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삶은 바로 주님과 함께 하루하루 살아(걸어)가는 것입니다.

지혜안에 기쁨이 있고(집회51,15), 순결함 속에서 지혜를 발견합니다(집회51,20).

하루하루의 단순한 삶이, 충실한 삶이 지혜이며 기쁨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음에 제가 찾아낸 답은 ‘하루하루 주님과 함께 살면 된다.’입니다.

 

작년 저희 요셉수도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나눴던
공동체적 고백과도 같은 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를 나눔으로
강론을 끝맺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25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그 자리에 불암산(佛巖山)이 되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며 살았습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한 산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25년 연륜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대(長大)한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山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일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모두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永遠)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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