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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1 조회수807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The chief priests, the scribes, and the elders
approached him and said to him,
"By what authority are you doing these things?"
(Mk.11,27-28)


제1독서 집회 51,12ㄷ-20ㄴ
복음 마르 11,27-33

어제 피정 강의를 위해서 집을 나서다가 아주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큰 도로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쳐야 하는데,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앞에 많은 차들이 이 길을 꽉 매우고 있었습니다. 원래 막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왜 그런가 하고 보는데, 맨 앞에 커다란 트럭이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좁아지는 골목길이었기에 빠져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맨 뒤의 차부터 후진을 해서 나갈 수밖에 없었네요.

그 큰 트럭은 이 좁은 골목길에 왜 들어왔을까요? 잘 모르기도 했겠지만, 아마 자신의 운전 실력을 과신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통계 결과를 보면 운전자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운전 실력을 과신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신하는 그 운전 실력 때문에 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하지요. 언제라도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탓에 위험한 추월을 서슴지 않으며 빙판길에서조차 가속 페달을 밟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는 다른 영역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은 범행을 일으킬 당시 자신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선거 때보면 자질이 한참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후보자로 나옵니다. 이 역시 자기 자신을 과신하기 때문에, 자신이 꼭 당선되어야 나라가 산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자신을 과신하는 착각이 안 좋은 상황으로 만듭니다. 다른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과거 예수님을 반대했던 이유 역시 이렇게 자신을 과신하는 모습 때문에 이루진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예수님께 말하지요.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만약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하면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고발할 생각이고, 당신 스스로의 선택으로 한 것이라면 인간이면서도 감히 율법에 반대하는 행동을 한다고 신성모독으로 고발할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즉, 그들은 무조건 예수님이 잘못되었다고 결정해놓고 올가미를 씌우려고 합니다. 자기들만이 옳다고 과신하는 착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판단이 옳았을까요? 그들의 잘못된 판단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으며, 하느님의 아들을 감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는 커다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을 과신하는 모습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자기만 옳은 것이 아니라, 자기만 틀릴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항상 겸손한 모습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주님을 반대하는 우리가 아닌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존재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그들을 삶에 초대하는 과정에서 행복이 만들어진다(테레사 프레이리).


어제 5월의 마지막날, 교구청에서도 성모의 날이 있었답니다.



거울과 같은 우리의 삶

거울을 보며 화난 얼굴을 하면 자신이 화난 모습으로 비춰지고 웃는 얼굴을 하면 자신이 웃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 거울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요? 즉, 남에게 친절하면 남도 내게 친절하고 남을 악하게 대하면 남도 내게 악하게 대한다는 것이지요. 상대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남이 내게 불친절하거든 ‘내게 감히 이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불친절했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또 남이 내게 섭섭한 말을 하거든 이때도 ‘나도 모르게 그에게 섭섭한 말을 했구나!’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변하는 상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변하는 상대를 통해서 내가 받고자 하는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을 생각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Song of the Sea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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