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체성혈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2 조회수321 추천수5 반대(0)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광야에서 지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만나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만나’보다는 영혼을 살리는 ‘성체와 성혈’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면 우리는 영적으로 충만해집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공통된 주제는 ‘축복과 나눔’입니다. 아브라함은 멜키세댁의 축복을 받았고, 자신의 소유에서 십분의 일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5000명이나 먹고도 남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요즘 축복의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수련장을 알리는 명함과 볼펜을 만들었습니다. 그 단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명함과 볼펜을 받으신 분들께서 수련장으로 피정을 오셨습니다. 제가 드린 명함과 볼펜의 수십 배, 수백 배의 축복입니다. 동생 수녀님 본당에서 몇 분께서 피정을 오셨습니다. 수녀님께 피정 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사무실 앞에 ‘성모상’을 모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우분들께서 ‘성모상’을 봉헌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또한 수백 배, 수천 배의 축복입니다. 복음화학교에도 봉사자들에게 볼펜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수련장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위한 기도문을 봉헌해 주셨습니다. 이 또한 큰 축복입니다. 부족한 저를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큰 축복과 은총을 주십니다. 하물며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야 그 축복과 은총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10년 전에 교구청에서 일을 할 때입니다. 동창 신부님이 종로 허리우드 극장 있는데서 운전을 할 때였습니다. 잠깐의 실수로 앞에 있는 차를 받았습니다. 앞에 있던 차의 운전사는 목을 만지면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걱정을 하면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너무 기쁜 표정으로 왔습니다. 앞에 차를 운전하는 분이 다른 동창신부였기 때문입니다. 동창 신부는 ‘땡’ 잡았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친구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냥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보험처리를 하자고 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묻기 전에 하느님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풀어버리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위해서 이미 모든 보험금을 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셨고, 남은 조각을 모았을 때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셔도, 남았고, 그 남은 것들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향기와 같아서 지나간 자리에만 있어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거칠고 나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도 여운이 남습니다. 그 여운은 기분이 나쁘고, 기억하기 싫은 것들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생각합니다. 과연 내가 걸어온 길 위에 남는 것들은 무엇일까? 사랑을 남기고 오는 것일까, 위로를 남기고 오는 것일까, 희망을 남기고 오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암세포를 생각합니다. 암세포는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나누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혼자 차지하려고 합니다. 세포는 점점 커지고, 주위의 세포를 짓누르며 비대해집니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자신도 죽고, 곁에 있는 다른 세포들도 모두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주변에는 ‘암세포’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분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분노와 미움이 남게 됩니다.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 행복인 것 같지만 참된 행복은 가진 것을 축복으로 알고 나누는 것입니다.

어릴 때, 물을 퍼 올리던 펌프가 생각납니다. 펌프에는 늘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어주고 펌프질을 하면 수백 수천 배의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어린 저에게는 참으로 큰 체험이었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이지만 기꺼이 내어주니, 모든 사람이 마시고도 남는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낌없이 마중물이 되어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꽃동네, 작은 예수회,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 이태석 신부님은 모두 한 바가지의 마중물 정신을 사신 분들입니다.

어느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교회가 없어서 대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늘어나서 대학교의 강당에서는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는 교회를 신축하기 위해서 200억을 모금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기 위해서 200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신자들은 4곳의 교회로 나누었고, 다른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기 위해서 마련한 200억 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고, 베트남, 러시아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장을 세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공동체는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알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그대로 이웃들의 발을 씻겨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성체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마중물’이 되시어 수많은 신자들의 가슴에 용기와 생기를 주고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축복을 받았으면 나누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은총이 되돌아 올 것입니다. 바다의 물이 마른 적이 없듯이, 하느님의 사랑은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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