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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3 조회수946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Mk.12,7)

제1독서 토빗 1,3; 2,1ㄴ-8
복음 마르 12,1-12

며칠 전에 운전을 하다가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승용차를 운전하시던 분이 차에서 내려 자기 앞의 택시 운전기사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물론 택시 운전을 하시던 분이 어떤 운전 실수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욕을 저렇게 심하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인상을 찡그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결국 택시 기사도 차에서 내려 다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둘의 싸움이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지요.

잘잘못이 어디에 먼저 있었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다른 이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지요. 사실 어떤 행동이든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세워 그 행동만 바라본다면 당연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지요. 어제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글입니다.

한 의사가 응급수술을 위한 긴급전화를 받고 병원에 급히 들어와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의 아버지가 의사를 보자마자, “오는데 하루 종일 걸리나요? 내 아들의 생명이 얼마나 위급한지 모르나요? 의사로서 어떤 책임 의식도 없나요?”라고 쏘아 붙입니다. 의사는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왔지만 외부에 있어서 늦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니 조금만 진정해주세요.”라고 말했지요. 이 말에 환자의 아버지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하라고? 만약 당신의 아들이 지금 여기 있다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몇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밝은 표정으로 나온 의사는 성공적이라고만 말하고는 급히 나가는 것입니다. 환자 아버지는 “저 의사는 왜 저렇게 거만한가요? 내 아들의 상태를 묻기 위해 몇 분도 기다릴 수 없나요?”라고 서운한 감정을 이야기했지요. 바로 그때 간호사가 이런 말을 전해줍니다.

“의사 선생님의 아들이 어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례 중 수술전화를 받고 급히 들어온 겁니다. 아드님 목숨을 살리고 장례를 마무리하러 급히 가신 거예요.”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나의 입장만 받아들이는 것을 소통으로 생각하지요. 나의 입장이 통하지 않으면 무조건 불통으로 생각하면서 그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거부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작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파견한 종들을 죽이고, 심지어 사랑하는 외아들까지 죽여 버립니다. 포도원 주인이 보여 준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입장만을 내세워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으며 결국 죄에 물들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 주님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죄에서 벗어나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에겐 풍경이 된다(이희인).


제가 선물을 받는 것일까요? 주는 것일까요?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친절이 행운을 만든다.

장대비가 퍼붓는 날,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가구점 앞에 한 할머니께서 서 있었습니다. 가구점 주인이 물었지요.

“할머니, 가구를 사러 오셨습니까?”

“아니에요. 비가 와서 걸을 수도 없고, 내 운전기사가 차를 가지고 올 때까지 구경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안으로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편안한 안락의자도 있습니다.”

얼마 후, 가구점 주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철강 재벌 앤드류 카네기의 편지였지요.

“우리 회사가 수만 달러 상당의 가구를 구입할 예정인데, 당신 가게에서 구입하려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당신 가구점을 강력히 추천해주셨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가구점 주인이 만났던 노인이 바로 카네기의 어머니였던 것이었지요. 사실 이렇게 장대비를 보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젠장.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재수 없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가구점 앞에서 서성이는 할머니가 좋게 보일 리도 없지요. 아마 “저리 가세요. 비가 와서 장사도 안 되는데 재수 없게 왜 여기에 있는거에요?”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은 비가 와도 여유를 간직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카네기의 어머니와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만 밝히며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배려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Live To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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