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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상의 전환 - 2013.6.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4 조회수42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6.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토빗2,9ㄴ-14 마르12,13-17

 

 


발상의 전환

 

-경외, 신뢰, 지혜-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은 이!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시편112,1-2참조).

 

오늘 미사 중 화답송 시편 첫 구절입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신뢰할 때 지혜로운 발상의 전환이 이뤄집니다.
주님과 만남을 통한 지혜로운 발상의 전환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전례의 목적은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이요 업그레이드되어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깨달음이
내적치유와 더불어 내적변화로 이끌고 지혜로운 발상의 전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가 거행하는 지상 전례는 언제나 천상 전례의 반영이 될 것이다.’

 

어느 가톨릭 고승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천상 전례의 반영인
거룩한 전례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비단 미사뿐 아니라
모든 전례와 성사, 기도 등 수행을 통해 만나는 살아계신 주님이요
알게 모르게 이뤄지는 지혜로운 발상의 전환입니다.

 

오늘 토빗과 그 아내, 복음의 예수님과
예수님께 올무를 씌우려고 보낸 사람들이 대조가 의미심장합니다.

 

보는 눈이 천양지차입니다.
토빗과 그 아내를 보면, 마치 소크라테스와 그 부인이 연상됩니다.
참 소통이 어려운 반려자들입니다.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전혀 교만을 느낄 수 없는 토빗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이런 토빗이 예기치 못한 참새 똥에 눈이 아주 멀어 시력을 잃었는데도
하느님을 원망하는 기색이 추호도 없습니다.

오해로 인해 훔친 염소인 줄 착각하여
주인에게 돌려 드리라는 토빗에 대한 그 아내의 반응에서
둘의 시야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깨닫습니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혹독한 믿음의 시련을 겪고 있는 토빗입니다.
참 외롭고 고독했겠지만 토빗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깊고 넓은 믿음의 시야를 지닌 토빗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세월이 지나면서
그 부인의 내적시야도 넓고 깊어져 남편 토빗과 비슷해졌을 것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욥기의 독서 시 욥의 진솔한 고백도 생각납니다.

 

“오, 하느님께 드린 내 말에 누가 증인으로 서 주겠는가!
나는 이렇게 속을 모두 털어놓았으니 이제는 전능하신 분의 답변을 들어보겠네.
…살아 온 나의 발걸음을 낱낱이 밝히며 귀족처럼 그의 앞에 나서리라.”
(욥기31,35;37;40참조).

 

토빗과 욥은 진정 항구한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저의 자작시 중 1연의 나무를 닮은 성인들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늘 높이 성장하는 나무들은 바로 우리의 내적성장을 상징합니다.

아마 토빗도 욥도 믿음의 큰 나무들로 성장했기에
높고, 넓고, 깊은 하느님의 시야를 지녔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역시 내적으로는 하늘 높이 자란 거목입니다.

 

진퇴양난의 올무에서 지혜로운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로부터 깨끗이 벗어납니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이들의 시야가 참으로 편협합니다.
하느님 차원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 오라 명령하신 후,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인가’ 묻습니다.

 

“황제의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전광석화, 천상 지혜 가득한 답변입니다.
완전한 발상의 전환입니다.

물은 이들은 전혀 이런 차원의 대답을 상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 속해있기에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시야에서 발휘되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은 결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사람 눈에 이원론이지 하느님 눈에는 일원론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알아서 네가 판단할 문제지만
바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예수님 의중 안에 있습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불필요한 논쟁으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세금을 바치고 제 본분에 충실함이 분별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크게 깨달아 시야가 아주 업그레이드된 이들은 매우 감탄합니다.

공동번역에는 크게 탄복했다 하는 데
이들의 깨달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감지합니다.

 

주님은 경외와 신뢰의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에게
천상의 지혜를 선사하시어 우리의 내적시야를 높고 넓고 깊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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