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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이라는 천상방문의 초대장을/신앙의 해[19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5 조회수406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림 : [단내] 성 가정상

우리는 대부분 시간의 흐름을 직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탄생, 삶, 죽음으로 직선적인
구분을 한다. 이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이다. 이게 우리의 시간이요 세상의 시간일
게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은 인간의 시간에 얽매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직선적인 시간관념에만 빠져 있었던 게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시간은 다르다.
하느님의 시간은 절대적인 시간이요 영원한 시간이니까. 여기에는 오직 현재만이
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그리고 지금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이가 하느님께는
현재의 인물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살아 계신 이들의 하느님이다. 예수님은‘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신 게다.

부활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그분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주님과 하나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삶은 이미 현세에서 시작되었고, 장차 주님 품 안에서 완성될 하느님 사랑의 극치이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다. 그렇지만 부활의 삶은 생명이신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면서 살아갈 때만 가능한 것이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는 ‘스승님,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라며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고대 사회는 남성 중심이었다. 더구나 이스라엘이 속한 중동 지역은 유목 사회였다.
그들은 초원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였고, 물과 풀밭이 부족하면 남의 영역을 침범도
하였다. 싸움은 일상사가 되었고 자연히 남자가 필요했고 그 영향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두가이는 유다의 지식층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지적 우월감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 없이 죽은 형을 위해 여섯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면
부활 후 어떻게 되겠는지를 질문한다. 질문 자체가 비논리적이며 유치하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불손함을 받아 주시며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남기셨다. 
 

이 같은 맥락으로 많은 이가 다음의 생각을 한다. ‘우리가 부활하면 죽을 때의 나이로
부활할까, 아니면 전성기 나이의 모습일까? 그렇다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오래도록 살다가 죽은 아들이 부활한 다음에 서로 알아나 볼까?’ 몸의 부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기에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다.’라는 말씀하셨다. 저 세상에서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계획이
있다는 게다. 부활은 인간의 지식에 속하지 않는다. 부활은 깨달음이며 은총이다.
순수함으로 다가갈 때에만 주어지는 은총이다. 어설픈 지식은 오히려 방해일 게다.
 

부활은 소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일 것이다. 전혀 다른 생명으로 바뀌는 것일 게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사두가이들이 엉뚱한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은 하느님의 능력을 모르기에 잘못 생각하는 것이란다.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조용히 이르신다.

그렇다. 죽은 다음의 세계는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질문하고 쉽게 답한다.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곧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혼인한다는 설정 또한 얼마나 유치한 생각일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 아니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정말 그렇다.
성경을 모르면 잘못 질문하기 십상이다. 억지를 부리고 고집을 내세우기도 할 게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 익지 않은 벼는 알맹이가 없어 바람에 날리니까. 빈 수레가
요란한 것과 같다. 성경을 읽지도 쓰지도 않는 이가 부활에 대해서는 더 요란하다.
사두가이와 하들 다를 바 없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심을 깨달아 살아생전 진지한 믿음의 삶을 누려야
할 게다. 어쩜 성모님과 같이 겸손과 순명의 삶을.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이라는 천상방문의 초대장을 분명히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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