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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 (요한복음 20,19~23)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5 조회수532 추천수3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보는 요한복음 / 홍성남 신부 

       

       

 

 

 

요한복음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여러분은 언제 마음이 편안하십니까?
어떤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내가 마음이 가장 편안할까요?
편안할 때에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였나요?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하셨다.
그만큼 평화라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다.
자는 애기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어떤 분들이 임종하실 때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시는 분들일까요?
편안한 날이 몇 퍼센트나 되십니까?
사람의 마음은 아이 같아서

너는 몇 점짜리냐고 물으면 반드시 대답을 한다.
내 마음이 어디에 움직이나 봐야한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편안할 때는 3가지가 균형을 잡았을 때라고 한다.
 

 

신체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균형이 잡혔을 때이다.
내가 살아가는데 갖추어야할 조건들이 있는데
우선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데 몸이 아프면서 마음이 편안하기는 어렵다.

성인들처럼 몸이 아프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렇게 살수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몸이 아프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몸도 편안해야 되고 마음도 편안해야 일도 잘 된다.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몸도 마음도 아프다.

남편을 세상살이에 초연한 수도자 같은 사람을 만나
그것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했는데
살다보면 그것이 맘에 안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편안하려면,
내가 평화롭다는 삶을 살려면 3가지 조건이 다 맞아야 된다.
돈도 잘 벌어야 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이 3가지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가장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수도자는 세상을 버렸다고 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어 사회적 조건이 이미 갖추어진 것이다.

중국교회도 정부에서 주교를 임명해도
지하교회가 있는데 거기 신부들이 살아남는 것은 지하교회신자들이 인정해주기 때문에 사회적인 뒤 배경이 있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다.

내가 사는데 불편하거나 짜증이 난다는 것은
이 셋 중에 하나가 무너져있는 것이다.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적으로 균형이 같이 무너져내려가기 때문에
반드시 3가지가 같이 갖추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바라신 것은

이 3가지를 다 주시겠다는 것이다.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괜찮다.
당신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갖고 나까지 하느님을 귀찮게

해주면 안 된다고 기도하면 늘 배고프고 춥게 살게 된다.
우는 아이에게 밥을 준다. 
 

 

       

                                                                      
 

 

-평화의 조건

1. 신비주의적 평화
기도를 해서 황홀상태에 들어가는 평화,
아니면 성령체험의 평화를 기대하는 신비주의의 평화는 위험성이 높다.
이 신비주의는 강박신경증으로 갈 위험이 높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아주 현실적인 것을 얘기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계실 때 사람들에게 몸의 병을 고쳐주셨다.
마음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일단 병자를 치료해주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는데
그것이 신체적인 건강이 사람의 마음의 평화에
얼마나 많이 영향을 미치는지 당신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말라는 얘기도 안 하셨다.
단지 돈을 번다는 것 자체에만 눈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
마음의 평화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많은 얘기를 하셨다.
 

 

이 세 가지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강조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셨다.
후대에 스토아철학을 공부한 엄격주의적이고
육체를 죄악시 하는 성향의 신앙생활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은 오직 심리적이라고 했다.
돈은 다 내놓고 자기 신체를 학대를 해야 된다고
중세 때 수도원에서 자기를 때리는 자기 자학이나 단식하는
 

 

자기 처벌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갖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메조키스트이다.
수도자들이 성인이라고 부르니까 자꾸 그 쪽 방향으로 가는데
 

 

그런 사람과 살면 자기 자신이 힘들어질 것을 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는 평화는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평화가 아니다.

 

 

2.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손과 옆구리에 구멍이 났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부활하면 새 몸으로 태어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냥 망가진 모습 그대로 나타나셨던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활의 모습과 다르다.
막달레나 마리아가 못 알아볼 정도로 헌옷에 상처 입은 채로 나타나셨다.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같이 밥 먹자고 하신 것도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 나타나신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자 독특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꾸 미화시킨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셨다.
부활 때 왜 그렇게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나타나셨을까?

심리치료를 하는 목표가 사람을 고친다는 의미가 있고 성격개조의 의미가 있지만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것이 없고 심리치료는
본래의 모습에서 조금 수리를 해서 수선작업을 한 정도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한다.
심리적 부활이란 것은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새것이 망가졌는데 대충 수선해 쓰기 좋은 것으로 바꿔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치료의 목표는 신앙생활의 목표와 유사하다.
주변 사람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만족스러운 적응을 방해하는
환자의 고통스런 신경증적 증상이나 부조화된 성격특성을

줄이는데 목적이 있다.

본체는 그대로 다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잘 안 바뀐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면 화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려면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강박증이

성인콤플렉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범하게 살다가 죽는다.

정신치료는 수선작업인데 심리적 부활이나
환자성격의 완전한 재구성 같은
굉장한 변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수칙이다.

어떤 사람이 완전히 고쳐줄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상담자가 가지고 있는 야심 때문이다.
고쳐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상담자의 권위로 50%는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습화되면 안 된다.
어느 정도 가면 현실적 얘기를 해줘서
사람의 마음이 완벽하게 바뀔 수는 없다는 것,
자기 자신에게 요구를 너무 많이 하지 않게 해야 한다.

살면서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자기 요구란 잔소리이다.
내가 나한테 하는 잔소리가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다.
그때 매우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신앙생활도 똑같이 네가 신앙생활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렇게 사느냐하면 안 된다.

신앙생활 한다고 확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당에 왔으니까 이 정도라고 해야 한다.
심리치료는 중요한 장애를 일으키는 성격부분만을 다루는 것이다.

환자가 바꾸고 싶지 않은 성격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이 신경증적 증상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그냥 두라고한다.
주위 사람은 힘들어해도 본인은 화를 내서 시원해하면 그냥 살게 두어야한다.

그 사람은 그러려니 생각해 주어야 한다.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된다. 건드리면 커진다.
사람의 성격도 막 건드리면 안 된다.

자기 성격이 크게 자기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안고 가는 것이 좋다.
그것을 자아 동조라고 한다.
내가 나에 대해서 난 원래 성격이 그래 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손을 안 댄다.
내가 이런 성격가지고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 칼을 대는 것이다.


 

3. 용서

나와 너가 있을 때,
나의 영역이 있고 너의 영역이 완전히 붙어있을 때
나와 너가 하나가 되었을 때가 언제일까요?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날 때
내 머릿속에 오직 그 사람 생각만 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할 때도 그렇지만
 

 

너무 미워할 때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거리감이 있어도 그 사람 생각으로 꽉 차 있을 때가 있다.
사랑과 분노는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지만
 

 

사랑은 그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 내가 살아나지만
분노란 것은 그 사람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성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내 인생 안에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라는 의미이다.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을 내보내는 방법이 용서해주는 것이다.
용서의 방법으로 가장 강력한 방법은 내 인생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용서란 내 곁에서 떨어트려 놓는 것이다.
내 인생에 달라붙어있는 것을 떼어내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해소가 되었을 때는 사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밀어내야한다.

밀어내는 것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자꾸 끌어다가 화를 키우는 것이다.
죄의식을 갖지 않게 하기위해
고해성사 때 미워했다고 할 때 잘 했다고 하는 것이다.
 

 

밀어내기란 생각자체를 나가라고 소리쳐야 한다.
Get Out Therapy이다.
 

예수님 당대에는 사탄아 나가라고 했다.
 

 

그 생각은 마귀가 네 안에 집어넣은 것이라고 해서
그 생각 자체를 객관화시켜 나가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대목들을 보면
 

 

심리치료방법들을 쓰셨던 대목들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복잡한 생각이 들어오거든 그 문제에 대해서 해결한 방법은 없는데
생각은 계속 밀려들어오면 나가라고 소리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긴다.
해결책 없이 그 생각 속에 그 늪에 빠져들면 안 된다.
잘못된 교육을 받은 분들이 미운데 용서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꾸 그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내가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힘이 있을 때 화도 내는 것이다.
 

미워할 때는 대차게 미워하고 싸울 때는 싸우고 사는 것이
살맛이 나는 것이다.
 

                                                        

 

 

 

 

 

 

자료출처 : 도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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