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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자기직면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7 조회수438 추천수4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보는 요한복음/홍성남 신부

                                     

 

 

 

 

 

 

요한복음: 21,15~19

                      예수님과 베드로



세 번째에는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주님이 아시나 하고 생각한 것이다.
왜 예수님이 세 번 물어봤을까요?
수사를 할 때도 똑같은 질문을 계속한다고 한다.
그러면 대답이 바뀌어가며 들통이 난다고 한다.

당신이 갖고 있는 베드로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베드로를 키워주려는 의미에서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거듭 물어보신 것과 그 효과

 

 

                                          

 

1. 긴 호흡을 요구하신 것이다.
긴 호흡을 해야 되는 이유는 긴 안목과 목표 때문에 그렇다.
교회의 수장이 될 사람은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
보는 것마다 바로 판단하고 잘라버리면 교회가 엉망이 된다.

교회는 개혁의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치유하는 장소이다.
사람들이 바깥에서 상처입고 마음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안식을 얻고 평화를 얻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나가는 자리이다.
교회를 사회적 조직과 비유하면 현대의 병원이라고 볼 수 있다.

병을 고치려오는 사람은 고쳐주는 입장에서 누구인지 상관없이 그냥 고쳐주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치유를 해주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 안에 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장기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오고 또한 계속 말썽을 부린다.

그런 것에 대해 교회의 지도자들이 치료효과가 날 때까지 긴 호흡으로 기다려주어야 한다.
베드로사도에게 왜 세 번이나 물어보았는가?
예수님께서 베드로,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내가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기다려주었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이다.

확신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나
냉담 하는 신자들에 대해서 비난을 못한다.
그렇게 바로 얘기하는 사람은 호흡이 짧은 사람들이다.
 

베드로사도가 많은 사람을 돌보아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베드로사도에게 긴 호흡을 갖게 하기 위해서
세 번이나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2. 긴장감의 영성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 그러신 것이다.
한 번의 물음과 한 번의 대답으로 끝나면 긴장감이 형성되지 않는다.
거듭 묻게 되면 질문 받는 사람이 긴장하게 되어있다.

건강한 사람들은 긴장을 즐기고 게임을 많이 한다.
게임을 해서 이기고 지는 것을 즐긴다.
심리적으로 병약한 사람들은 이기고 지는 것에 많이 치여 도망가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병약한 사람들이 신앙생활에서 늘 바라는 것이 평화이다.

제주도 해녀들이 이어도라는 노래를 많이 부른 것은
고생 안하는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
 

 

즉 이상적인 곳에 대한 바람을 갖고 사는 것이다.
이 삶이 빨리 끝나 그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의
늘 천당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 좋다고 하셨다.
하느님이 보시기 좋다고 하셨으니
천당도 여기와 비슷할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모험이나 도전 같은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안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예수님에게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변모하셨을 때 집 3채를 지어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상대에게 나 하고만 살아야 돼,
혹은 다른 사람들 쳐다보지 말고 나만 바라보라고 하는 스토커이다.


3. 자기직면을 시키기 위해서이다.

어떤 대상을 보았는데 그 대상이 우리 안의 내 욕구와 코드가 맞았을 때에는
온갖 감정이 다 올라오는데
그런 것들을 하지 말라고 성서가 말하고 있어

성서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역인지 모른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보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하신 말씀들이 많다.

사람의 마음이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거의 대부분이다.
성서들을 제자들이 쓰면서 조금 문제가 있다.
신약성서의 절반은 제자들이 쓴 것이라고 한다.

마르코 복음이 비교적 예수님의 말씀에 가깝다고 하지만 절반이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제자들의 말들을 더 많이 듣고 있고
제자들의 말보다 바오로사도의 가르침을 더 많이 따라가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애초의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찾는 것인데
그 찾는 방법 중에 하나가 심리학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예수님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시려고 애쓰신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엄격한 경직됨에 대한 반발로
근대의 프로이트는 종교적 강박증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심리학이 처음에는 히스테리아, 즉 자궁에 문제가 있어서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해석했다.
나중에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은 인간이 자기 안의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을 하면
히스테리가 되고 신체적으로 질병이 된다고 발견했다.

그랬더니 종교 쪽에서 반발이 심해지고
심리학을 멀리하고 더 윤리학적으로 나가 지금도 그 후유증이 있다.
예전에는 생리학적인 반응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는데

그 단계가 지난 다음에는 무의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다음에는 자아실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금은 초심리학, 영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심리학자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심리학이 성서와 많이 가까워졌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사도에게 세 번 물어보신 것은
자기직면, 자기 들여다보기를 시키신 것이다.

심리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를 때에는
거울을 보고 너 누구냐고 대략 30번 정도 물어보면

그러면 물어볼 때마다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오는데
그것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예수님이 세 번 물어보신 것은
베드로 사도의 의식의 껍질을 하나씩 깨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사도에게 네 안을 들여다보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자기직면과 자기성찰은 거의 비슷하지만
자기성찰은 죄를 헤아리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자기성찰이란 것은 죄를 지었으면
왜 그 죄를 지었는지를 내가 나에게 물어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이런 자기성찰이 자기직면과 같은 점은
죄를 지었을 때 단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이유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본래 자기성찰이고 자기직면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사도를 야단친 것이 아니고
네가 네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여러 번 물으신 것이다.
베드로사도가 바깥으로 향하고 있던 마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시선을 죄에 맞추고 있는 것과
내 마음에 맞추고 있는 것과는 전혀 삶이 다르다.
내가 내 죄의 개수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피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피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고해성사를 보면 영성체를 할 수 있고
고해성사를 안 보면 영성체를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살지만 사실은 껍데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러면 내적성장이 없다.
이것이 더 나아가면 바리사이 콤플렉스에 걸린다.

나는 헌금도 내고 교무금도 내고 주일미사도 다 지켰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콤플렉스가 생기는데
이것이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죄를 묻지 말고 자기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간음을 한 여인이 잡혔을 때 예수님이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쉽게 남의 죄를 묻고 또 내가 내 죄를 묻는다.
너 무슨 죄를 지었어? 라고 죄에 대해 따지게 되면 깊이가 없게 된다.


 

자기 깊이를 가지려면
내가 왜 이런 잘못을 반복해서 짓는 것일까를 자기에게 물어봐야 된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를 물어봐 주어야 된다.
그래야 자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갈수록 편안해진다.


동물적 본성 vs 거룩한 생활
거룩하다는 표현은 사실은 본인이 쓸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이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건강한 삶을 사는가이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건강한 삶은 내 안의 동물적 본성을 들여다보고
내 안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겸손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만 인정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냥 그 사람이 괜찮다고 한다.
솔직하다는 것은 내 안에 그런 것이 있구나하고

그냥 혼자만 알고 있으란 것이다.
그리고 표현할 때에 가볍게 표현하라는 것이다.
자기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잘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표현할 때 지혜롭게 표현한다.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공부이다.
 

 

 

 

 

 

 

 

 

 

자료출처 : 도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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