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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9일(일) 福女안나 마리아, 福女디아나 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8 조회수375 추천수0 반대(0) 신고



6월9일(일) 음 5/1

福女안나 마리아, 福女디아나


 


안나 마리아 타이지(6.9)

성인명

안나 마리아 타이지(Anne Mary Taigi)
축일 6월 9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증거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769-1837년
같은이름 낸시, 니나, 메리, 미리암, 애나, 애니, 앤, 타이기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Anna Maria Taigi)


 
 



안나 마리아 타이지(Anna Maria Taigi)는 1769년 5월 29일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약종상이었는데 사업이 망하여 가난에 찌들게 되자
로마(Roma)로 이주하였다.
안나의 부모는 가정부로 들어갔고 안나 자신은
가난한 어린이를 교육하는 단체에 보내졌다.
13세의 어린 나이로 그녀는 소녀 가장이 되었다.
면사 공장에서도 일했고 귀족 집의 하녀로도 일해야 했다.

어느덧 처녀로 성장한 그녀는 1790년에
도미니쿠스 타이지(Dominicus Taigi)라는 청년을 만나 결혼하였다.
그런데 그 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사제에게 총고백을 하고나서 마음을 일신하였다.
그녀는 수년 동안 천주의 종 수도회의 안젤루스(Angelus) 신부에게 고해를 보고
또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늘 갓 회개한 사람처럼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헛된 것을 끊어버리고
세속적인 모든 쾌락을 추호도 탐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나는 바느질 품삯으로 남편의 적은 수입을 도왔고 가정에 충실하였다.
한편 영신적으로는 굉장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하느님은 그녀에게 놀라운 기적까지 허락하셨고,
탈혼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예언하는 힘을 주셨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탄의 간교와 영적인 무미건조함으로 큰 고통을 받기도 하였다.
그녀는 1837년 6월 9일 68세의 일기로 운명하였고,
1920년 5월 30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가난하게 태어났고 결혼 후에도 고통의 연속이었으나
사제에게 충고백을 한 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헛된 것을 끊어버렸던 가정주부

 

삶의 어려움을 은혜의 기적으로 바꾸어 받으셨던
사랑의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디아나(6.9)

성인명

디아나(Diana)
축일 6월 9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볼로냐(Bologna)
활동연도 +1236년
같은이름 다이아나, 다이애나

 


볼로냐의 성녀 디아나(Diana)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이탈리아 내의 수도회 활동을 위하여 한적한 곳을 찾았을 때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는 볼로냐를 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소망하던 훌륭한 대학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수도원을 지었으나 반대가 극심하였다.
그것은 그 땅을 소유하고 있던 안달로가(家)의 위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안달로의 무남독녀인 디아나의 간절한 호소에 굴복하였다.
성 도미니코는 사적으로 그녀의 동정서원을 받아들였고
가능하면 수도생활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었다.
얼마동안 그녀는 자기 집에 그대로 머물면서 회개 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녀는 도미니코 수녀회의 수도원을 짓기로 집안사람들을 설득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녀의 부친은 완강히 거부할 뿐 아니라
그녀가 수녀회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집을 나와서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온 가족이 몰려와서 강제로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온 그녀는 독방에 갇혀 지냈으나 또 다시 집을 탈출하여
록사나(Roxana)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작센(Sachsen)의 요르단(Jordan, 2월 15일)이
안달로와 그의 아들들을 설득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미니코 수도원을 짓는데 도움까지 베풀도록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디아나는 1222년에
로마(Roma)의 성 식스투스(Sixtus) 수녀원에서 온 4명의 수녀들과 함께
볼로냐의 성녀 아녜스(Agnes)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들 중에 체칠리아(Caecilia)와 아마타(Amata, 2월 20일)가 있었다.
이 두 수녀의 생활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디아나와 마찬가지로 높은 성덕으로 유명하였다.
체칠리아는 로마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매우 뛰어난 여성이었다.
그녀는 17세 때 성 마리아(Maria) 수녀원에 들어갔다.
디아나는 1236년 1월 9일에 35세의 일기로 운명하였고,
체칠리아는 설립자 성 도미니코를 오랫동안 도왔다.
그들은 사망 후에 성녀 아녜스 수녀원에 나란히 안장되었고,
189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함께 시복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주님을 향한 열정에

부모님에게도 축복이 내려

성 도미니코 수도회에 큰 재산을 내어 놓게 하셨으며 


아름다운 기도회의 만남을 보여주신

사랑하는 성녀 디아나님과 동료 수녀님들이시여

 
저희들이 본당 안에서 소공동체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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