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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9 조회수757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6월 9일 연중 제10주일



"Do not weep."
(Lk.7,13)


제1독서 1열왕 17,17-24
제2독서 갈라 1,11-19
복음 루카 7,11-17

어떤 신부님께서 제게 “요즘 책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웬만하면 다 만 원이 넘는다면서 책값을 싸게 책정할 수 없느냐고 묻습니다. 아마 제가 책을 출판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요. 물론 출판사가 책값을 책정하기 때문에 제가 이 부분에 대해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약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요즘에 커피 한 잔 마시는데 거의 오천 원 가량 됩니다. 너무나도 비싼 커피 값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커피 전문점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지요. 그만큼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커피 두세 잔 값인 책 한 권을 사는 것은 왜 그렇게 주저할까요?

아마 커피는 곧바로 만족감을 주는 반면에, 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커피는 쉽게 마시면서 만족할 수 있지만, 책은 자신이 읽는 수고를 겪은 다음에야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어떤가요? 당연히 책을 통해서 얻는 가르침이 내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줍니다.

곧바로 눈에 보이는 효과 그리고 너무 편하게 얻을 수 있는 것만을 원하는 우리들이 아니었을까요? 이는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랑, 주는 사랑이 아닌 받는 사랑, 남을 위한 사랑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사랑만을 추구하는 것도 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겉으로 쉽게 보이는 것만을 얻고자 하는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감추어진 아픔과 상처를 어루 만져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한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주시지요. 사실 이 외아들은 이미 죽은 상태로 장사를 지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아들의 어머니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십니다. 당시 과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을 잘 아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을 지탱해주는 외아들까지 잃었으니 그 아픔이 얼마나 클 테고, 또 앞으로 삶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죽은 이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하느님의 몫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이 과부 아들의 죽음 역시 이미 하느님의 영역으로 들어간 상태로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아픔과 상처에 더욱 더 주목하시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예수님의 이 사랑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기 기준에 맞추는 사랑이 아닌, 진정으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사랑. 나만이 얻으려는 욕심 가득한 사랑이 아닌,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따뜻한 사랑. 곧바로 결과를 원하는 성급한 사랑이 아닌,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사랑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는 곳에서만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로 찾아오십니다.

 
 
당신에게 깃털만큼의 희망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시 일어서야 한다. 우리에게 삶을 포기할 권리란 애당초 주어지지 않았다(최재천).


기도하는 손



기도하는 손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urer 1471~1528 )라는 독일 늬른베르크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에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 화가는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했기 때문에 미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학비를 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가난한 친구와 만나서 의논을 했습니다. 친구는 뒤러에게 한 명씩 교대로 공부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먼저 뒤러가 공부할 수 있도록 친구가 돈을 벌어 학비를 댄 뒤에, 나중에 성공하면 역으로 친구의 학비를 대기로 했지요. 그리고 뒤러는 친구의 도움으로 그림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를 찾아갔지요. 그런데 친구의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는 구석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저는 너무나 심한 일로 손이 굳어져서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친구 뒤러는 화가로 꼭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이 장면에 감격한 뒤러는 그 감동을 화폭에 남기는데, 그 그림이 바로 ‘기도하는 손’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 중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손이 가장 깨끗하며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인 것이지요.

친구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랑, 친구 몰래 도와주는 그 사랑이 있었기에, 뒤러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안에 우리들이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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