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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11일(화) 사도 聖바르나바, 聖女바울라 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0 조회수355 추천수1 반대(0) 신고



6월11일(화) 음 5/3

사도 聖바르나바, 聖女바울라


 


바르나바(6.11)

성인명

바르나바(Barnabas)
축일 6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
같은이름 바르나바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극찬을 받은 성 바르나바는
비록 그가 12사도에 들지는 않았으나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원래 키프로스(Cyprus) 태생으로 요셉(Josephus)이라 하였는데,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다.

이때 사도들이 그에게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는 그곳의 공동체를 설득하여 바오로(Paulus)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둘러보기도 하였다
(사도 11,22 이하).
그리고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로부터 그곳으로 데려왔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공동체에
안티오키아의 기부금을 전달하였고,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세 사람이 키프로스와 베르게 그리고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선교여행 길에 올랐을 때, 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자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은 리가오니아의 이고니온과 리스트라로 갔으며,
여기서 그들은 신들로 인정받았으나 곧 돌 세례를 받게 되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갔다.







유대인 예식 준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그들의 활동 보고를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오는 길에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다른 방문 길에 오르려 하였으나,
밤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로
요한 마르코를 반대하자 그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나,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나바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Roma)에서 전교하였고,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61년경에 살라미스에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위경인 바르나바의 편지가 그에게 헌정되었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70년과 100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신자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나바의 복음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그리스도인이 기록한 듯하고,
바르나바의 행전은 요한 마르코의 업적일 것이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재산을 모두 팔아 교회에 봉헌하고

여생을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 머물면서
12사도 이외의 사도로 인정받으신 님

 

성 바오로와의 선교 길에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초대 교회의 큰 일꾼이셨던

사도 성 바르바라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저희도 사도의 영성을 지닐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축복해 주옵소서!...아멘

 
 

 

 

 

 

 

 


바울라 프라시네티(6.11)

성인명

바울라 프라시네티(Paula Frassinetti)
축일 6월 11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809-1882년
같은이름 바울라, 빠울라, 파울라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Paula Frassinetti)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 중에서도 가사를 돌보며
아버지와 사제가 된 네 오빠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기관지 관련 병이 심해져
오빠가 주임사제로 있던 시골 마을 귄토(Quinto) 본당으로 갔다.
여기서 건강을 회복하고 식복사로 일하던 그녀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연이어 수도성소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녀 주위에는 뜻을 같이 하는 자매들이 많이 모였으므로
공동체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다.
그녀는 기도로써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는데 결국은 성공하였다.
1834년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제노바에서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Congregation St. Dorothea)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곧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포르투갈과 브라질까지 진출하여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1863년에 성좌로부터 승인을 받은 이 수녀회는
그리스도교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단체이다.
특히 설립자인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사람들의 내면을 읽고 이해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몇 차례의 뇌출혈로 인해 고생하다가
1882년 6월 11일 로마(Roma)에서 선종하였고,
시신은 로마의 성 도로테아 수녀회 모원에 있는
성 오노프리오(Onofrio)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녀는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3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파올라 프라시네티(Paola Frassinetti)로도 불리는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병든 이들의 수호성녀이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9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사제인 오빠들의 가르침 아래 자라나
병약한 몸으로 오빠의 본당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수도 성소를 깨닫고 자신을 봉헌했으며
건강의 은혜를 입고
수도 공동체까지 설립하신 님

 

병든이들의 수호성인이신
복녀 바울라 님이시여,

병약한 이들에게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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