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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목 놓아 울었다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1 조회수513 추천수1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에사우가 변했다/ 축복


에사우가 이스마엘의 딸과 혼인하였다.

왜 그는 이스마엘의 딸과 혼인을 했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 같다. 에사우는 그동안 아버지 이사악과 어머니 레베카의 근심거리로

살아왔다. 히타이트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 들였기 때문이다(창세 26,35 참조).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면 안 되었는데 에사우는 이것을

무시하고 자기 좋을대로 살았다는 의미이고 보면 성경에 표현되지 않아서

그렇지 매사 자기 좋을대로 다 하고 살면서 그로인해 부모님께 근심을 안겨

주었다고 생각해 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참으로 아이러니다.

에사우가 변한 것은 야곱이 떠난 뒤부터이다.

무엇이 에사우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참으로 이상하다.

아버지 이사악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야곱인데 가장 먼저 변한 사람은

축복을 빼았겼다고 목 놓아 울던 에사우가 아닌가?

도대체 무슨일이란 말인가?

 

아,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어제 "이사악이 야곱을 떠나보내자."(창세 28,5)  이 장면을 통해 이사악의

마음을
느끼고 울었듯이 에사우도 그 장면을 통해 뭔가를 느꼈던 것이다.

 

"에사우는, 이사악이 야곱에게 축복하면서 그를 파딴 아람으로 보내어 그곳에서

아내를 맞아들이게 하면서, 그에게 축복하며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 들이지 마라.' 하고 당부하는 것과, 야곱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파딴 아람으로 떠나는 것을 보았다."(창세 28,6-7)

 

축복,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그러고보면 야곱은 두 번의 축복을 받은 셈이 되는 것이다.

한 번은 자신이 에사우라고 속여서 받았다.

그리고 한 번은 야곱이 떠나야 하는 구실로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말고 외할아버지 부투엘 댁으로 가서 외숙 라반의 딸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이라고 떠나 보낼 때에  또 한 번의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에사우가 이 두 번째 야곱의 축복 장면을 목격하고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되었다. "에사우는 자기 아버지 이사악이 가나안 여자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에사우는 아내들이 있는데도 이스마엘에게 가서,

다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창세 28,8-9)

 

에사우가 변하기 시작한 첫 단추는 보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도 아버지가 자신이 가나안 여자들과 결혼하여 사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지금은 보인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아버지, 아버지께는 축복이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버지, 저에게

저에게도 축복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에사우는 목 놓아 울었다."(창세 27,38)

 

나도 궁금했다. 정말 아버지께는 축복이 하나밖에 없나요?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신다. 왜 하나밖에 없는지 이제는 안다.

 

에사우가 목 놓아 우는 장면을 묵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목 놓아 울고 있을 때에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오셨다. 그리고 우리 둘은 끌어 안고 그저 목 놓아 울었다.

한참을 그냥 그렇게 울었다... 이렇게 울고 난 후 나에게 뭔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보였다. 엄마가 그동안 나를 진짜 사랑하고  계셨음을...

 

에사우가 목 놓아 울 때에 아버지 이사악은 그냥 보고만 있었는가...

참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슬퍼서 묵 놓아 울고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

사랑하는 아버지 품에서 나처럼 그냥 목 놓아 울고 나서 에사우도 나처럼 뭔가

그 안으로 들어 왔고 그래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씨앗이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씨 뿌리는 사람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결국 축복은 주님의 사랑의 씨앗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싹이 나는 것이었다.

결국 축복은 주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하나였다. 왜 하나인가?

그 사랑은 갈리움이 없이 온전한 하나이기에 하나였다.

 

에사우는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맏아들이기에 맏아들의

권리가 늘 자신에게 있을 것이라 여겼을 때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소중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빼앗기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진심으로 자신도 축복해 달라고 청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진심으로, 진심으로 청하고 있다. 목 놓아 울면서...

 

이렇게 진심으로 목 놓아 울면서 축복해 달라고 청하는 에사우를 끌어 안고

사랑해 주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 이사악은 목 놓아 우는

에사우를 끌어 안고 에사우보다 더 목 놓아 울었다...

이 때 에사우의 마음 밭이 옥토가 되었다.

아버지의 눈물이 그의 밭에 단 비가 되어 그의 밭은 옥토가 되었다.

그리고 그 밭에 떨어진 축복(사랑)의 씨앗이 싹이 텄다.

 

이전의 이사악과 에사우의 사랑의 관계는 어떤 관계였을까를 묵상해 보았다.

아버지 이사악의 일방적인 사랑의 관계였다. 이사악은 에사우를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에사우는 이사악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알지만 에사우의 사랑은

이사악을 향하지 못했다. 이것은 나와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였다.

 

나도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알고 느끼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온전히 예수님을 향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아직까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 중에서 에사우가  발견하지

못하고 살았던 부분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렇다.

 

에사우는 이제 보였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 가운데 무엇 때문에 근심하며

사셨는지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스마엘의 딸과 혼인을 하였던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면 좋을대로 살던 삶에서 이제 아버지가 좋아하는 삶을 살려고

그것을 살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에사우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아 들이듯이 말이다. 내가 좋은대로 내 맘대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 아버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볼 줄 알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내를 맞아 들이듯이 그렇게 아버지의 뜻을 맞아 들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에사우가 보았던 것이 하나 더 있다.

야곱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자신만 더 많이 사랑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야곱을 축복해 주시는 모습 안에서 야곱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도

보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알려 

주기 위해서,  가장 하면 안 되는 일을 당부하기에 그것을 알았다.

이사악이 야곱이 진심으로 자신이 일러주는 삶을 살아 행복하기를

바라고 축복해 주고 있음을 보았다.


그 사랑 앞에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았다. 그 사랑 앞에서 그는 결단을 내렸고 자신이 내린 결단을 살았다.

그래서 같은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같은 동족의 딸과 결혼하였다.

 

결국 이 축복 사건을 통해 본 것은 사랑의 회복이었다.

둘로 갈려 있던 사랑이 결국 하나임을 보았다.

아버지 이사악의 축복은 결국 두 아들을 생명의 길로 이끈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축복은 하나이고 축복은 예수님께서 뿌리시는 씨앗이었다.

예수님은 그 씨앗을 어떻게 뿌리시고 계신가?

내 발을 씻겨 주신다. 당신의 눈물로...

목 놓아 우는 에사우를 끓어 안고 함께 울며 흘리셨던 그 눈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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