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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부활을 상기시키는 꽃들, 수선화 · 달맞이꽃 · 개나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2 조회수8,004 추천수0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부활을 상기시키는 꽃들, 수선화 · 달맞이꽃 · 개나리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시켜 주는 꽃, 수선화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여느 식물들보다 일찍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식물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수선화다. 수선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스페인과 알제리 등 지중해 연안을 비롯하여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생한다. 서양에서는 이 식물을 한때는 대포딜(Daffodil), 나르시서스(Narcissus), 존퀼(Jonquil) 등의 이름으로 부르며 각기 별개의 꽃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교배와 교잡을 거쳐 통칭 수선화라고 불리는 품종이 11가지 주요 범주에 무려 5000가지 이상이나 될 정도로 다양해졌다.

 

수선화의 학명은 라틴어로 나르키수스(narcissus)이다. 이 이름은 ‘무감각해짐, 멍해지게 만듦’이라는 뜻이 있는 그리스어 나르케(νάρκη)에서 유래한다. 어떤 이들은 이 이름이 수선화의 마약성 향기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수선화를 놓아둔 좁은 공간에 사람이 머물면 그 향기로 말미암아 이내 두통이 유발된다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알뿌리의 독성과 관련되어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말한다.

 

수선화는 그 종류가 다양한 만큼 관련되어 전해오는 속설들이며 일화들도 많다.

 

그리스 신화에는 어느 나무의 요정 이야기가 나온다. 이 어린 요정 에코는 나르시서스를 본 뒤로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나르시서스는 신들에게서 빼어나게 아름다운 외모를 받았고, 그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울 따위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되는 처지였다. 나르시서스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크나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그를 향한 사랑 때문에 목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에코에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요정들의 부탁을 받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가 자만심 강한 나르시서스를 물결 반짝이는 호수로 유인했다. 그곳에서 나르시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반한 나머지 물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신들은 네메시스의 벌이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여겼고, 그리하여 그 벌을 바꾸어 나르시서스가 수선화가 되게 하는 것으로 정했다.

 

또 다른 그리스 신화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르세포네는 들에서 나리꽃들을 꺾어 모으던 중에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 세계로 끌려갔다. 그는 하데스에게 끌려가면서 나리꽃 송이들을 떨어뜨렸다. 나리꽃 송이들은 땅에 떨어지면서 수선화가 되어서는 페르세포네의 슬픔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찍이 그리스인들과 이집트인들은 수선화를 죽음과 관련된 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장례 기간 동안 흔히 수선화 화환을 걸어 두곤 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어떤 사람이 수선화를 바라보는 순간에 그 꽃이 아래로 처져 있으면, 그것을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일러주는 징조라고 믿었다. 그리고 아라비아인들은 이 꽃을 최음제로 사용했다.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를 키우는 사람들은 수선화를 재수 없는 꽃으로 여긴 나머지 집 안으로 들이지 못하게 했다. 닭이나 오리가 알을 낳고 또 알을 부화하는 것을 수선화가 방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가 검지로 수선화를 가리키면, 그 수선화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미신도 있었다. 또한 중국에는 새해 명절 기간에 수선화의 꽃이 피면 1년 내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수선화를 영국에도 전해 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수선화의 수액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고 그릇되게 믿었다. 그러나 수선화의 수액에는 동물들이 그 꽃을 먹지 못하게 막아 주는 치명적인 독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어쨌거나 영국의 앤 여왕은 수선화를 매우 좋아했다. 양탄자, 태피스트리, 옷가지 등에 수선화 무늬를 짜 넣거나 새겨 넣는 섬세한 바느질 작업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앤 여왕은 수선화를 좋아한 나머지 영국 최초의 공공 정원인 켄싱턴 왕궁 정원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웨일즈에서는 수선화를 나라꽃[國花]으로 여긴다. 웨일즈의 수호성인인 성 다윗의 축일인 3월1일 무렵에 수선화의 꽃이 피는 까닭이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수선화를 영원한 삶을 가리키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 근거는 수선화가 여러해살이풀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수선화는 봄이면 일찍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그런데 봄은 내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생 또는 새로운 생명과 삶을 의미하는 계절이다. 그런 점에서 소생과 새 생명의 계절인 봄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의 의미와 상징성을 본 것이다. 또한 교회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뒤에 그분의 무덤에서 수선화가 솟아나오고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러기에 수선화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시켜 주는 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수선화를 ‘성모님의 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러 왔다.

 

 

부활의 밤을 밝히는 초, 달맞이꽃

 

달맞이꽃은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이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귀화식물로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물가, 길가, 빈터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달맞이꽃은 굵고 곧은 뿌리에서 첫 해에는 원줄기 없이 뿌리잎들이 방석처럼 자라고, 겨울을 지낸 이듬해에 뿌리잎들 가운데서 1개 또는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서 곧게 자라고 꽃을 피우는 바늘꽃과의 두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인 7월부터 줄기의 잎겨드랑이에 하나씩 주로 노란색 꽃을 피운다. 야생 달맞이꽃은 밤에 꽃을 피우는 데 반해, 최근에 도입되어 정원에 화초로 심는 분홍달맞이꽃과 황금달맞이꽃은 낮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낮달맞이꽃이라고 부른다.

 

달맞이꽃은 17세기 초에 유럽에 관상용 식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100년 뒤부터는 이 식물의 씨앗뿐 아니라 어린잎과 줄기와 뿌리까지 거의 모든 부위가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그에 앞서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 식물을 식용과 약용으로 이용하였다. 서양 사람들은 이 식물의 꽃이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특성을 보고 흔히 ‘밤에 피는 앵초’(Evening Primrose)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꽃의 같은 특성을 보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밤에 불을 밝히는 초를 연상했다. 그리하여 ‘부활절 초’(Easter Candle)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주님 부활을 찬양하는 관목, 개나리

 

개나리는 이른 봄에 잎이 돋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운다. 그래서 정원이나 공원 조경에 인기 있는 식물이다.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인 개나리는 우리나라를 원산지로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물 중 하나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흔히 개나리라고 불리는 식물에는 한국이 원산인 개나리(학명: 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와 동북아시아 내륙(중국)에서 자생하는 의성개나리와 당개나리(학명: Forsythia suspensa (Thunb.) Vahl)가 있다. 한국 원산인 개나리는 의성개나리·당개나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처음에는 이 두 개나리의 변종으로 기록되었다가 나중에 변종이 아닌 한국 특산 식물로 기록되었다.

 

개나리가 서양에 알려진 것은 17~18세기의 일인데, 서양의 식물학자들에 의해서 유럽에 전해진 것은 의성개나리 또는 당개나리였다. 그래서 개나리의 학명은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 윌리엄 포시스(William Forsyth, 1737~1804)의 이름을 따서 포르시티아(Forsythia)라고 명명되었다.

 

개나리는 유럽에 소개된 지 오래지 않아서 훌륭한 정원용 관목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그리스도인들과도 친숙해졌다. 게다가 부활시기와 맞물리는 계절인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에, 개나리는 ‘부활절 나무’(Easter Tree) 또는 ‘부활절 관목’(Easter Bush)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개나리의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고 기뻐하는 찬양과 환호를 연상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4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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