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완성시키시는 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2 조회수684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복음: 마태오 5,17-19







성인들과 천사들에 싸인 성모


로토(Lotto, Lorenzo) 작, (1527-1528), 캔버스유화, 113,5 x 152 cm, 빈 미술사 박물관


     < 완성시키시는 분 >

1943년 어느 날, 길을 걷던 피카소는 버려진 자전거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안장과 핸들을 뜯어내고 안장 위에 핸들을 거꾸로 붙여서 황소머리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봐도 공들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난 뒤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이 작품이 293억 원에 팔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피카소의 천재성을 누린 인물이 있었으니 마르셀 뒤샹(1887~1968)입니다. 2004년 지난달 29일 영국에서 열린 권위 있는 미술시상제도인 올해의 터너상시상식장에서 참석 미술계 인사 500명에게 물은 결과,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뒤샹의 1917년작 이 뽑혔습니다. 그냥 변기 회사에서 찍어 낸 남자들을 위한 변기를 뉘어놓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서서 볼일을 보며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소변기가 뉘어놓으니 무언가 새로운 것을 느끼게 만듭니다.

참다운 예술가는 세상에 버려진 것으로부터도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능력이 없는 예술가는 완전한 재료들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멕시코시티 대성당 앞마당 일부분은 유리로 덮여져있습니다. 그 위에 올라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땅 속으로 사람의 해골과 뼈들이 보입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를 점령하고 원주민들을 성당 짓는데 이용하고 나서 성당 앞마당에 묻어버린 것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 그렇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랍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선교라는 미명하에 남미를 무자비하게 점령하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문화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자세는 이와 완전히 다릅니다.

내가 모세의 법을 폐지하러 온 줄 아느냐? 아니다.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모세의 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새로운 것이 오면 옛 것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참으로 새로운 것이란 옛것을 완성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것들을 완성시킨 것뿐이지 완전히 싹 쓸어내고 새로운 법을 만든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우리나라에 가톨릭이 들어왔을 때나, 혹은 중국에 들어왔을 때도, 이것을 미리 깨달았더라면 지금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훨씬 더 많은 가톨릭 신앙인이 있을 것입니다. 제사라는 전통을 그저 나쁜 것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파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예배가 들어올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고, 그래서 크게 반감을 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란 말을 씁니다. 이 하느님은 애국가에서도 나오듯이 우리 조상들이 조물주라고 여겨왔던 하늘님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의 God, 라틴어의 Deus,이스라엘의 엘로힘이나 야훼도 당시 그 지역에서 섬겨오던 신 이름이었습니다. 즉 참 하느님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하느님을 알고 있었는데, 그리스도교가 오고 나서야 그들이 어렴풋이 알던 신이 바로 참 하느님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그리스도교인 것입니다.

따라서 남미도 그렇게 그들의 문명을 싹 쓸어버리며 폭력적으로 선교할 때는 잘 되지 않다가 성모님께서 그들이 섬기는 달의 신 모습으로 달을 밟고 태양을 등지고 그들의 피부 빛으로 또 뱀을 이기는 여인이란 뜻인 과달루페란 이름으로 발현하시자 수백만 명이 일제히 가톨릭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전통을 중요시하며 가톨릭 상장례를 통해 이전에 이어오는 전통을 잘 받아들임과 동시에 제사와 연도를 함께 하는 등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유태인이란 구체적인 문화 안으로 들어오셔야만 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안 좋은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문명을 거부하셨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존재하는 것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셨지 당신만 완전하다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사도 옛 파스카 예식을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시킨 것이지 완전히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접근할 때, 내가 100% 옳고 상대는 100% 틀리다는 흑백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모습이라면 반감만 깊어져서 아무리 선교를 해도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 개신교가 처한 위기도 이 때문에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나는 사람 안에도 지금까지 작용해 온 성령의 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완성시킨다는 마음으로 만나야지 나와 같이 완전히 바꾸어 놓겠다는 마음으로 만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을 나처럼 바꾸려고 완전히 갈아치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형성과정을 존중해주며 완성시켜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