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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과 함께하는 용서와 사랑/신앙의 해[20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3 조회수543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림 : [베론] 십자가의 길

사람에게는 육체적 나이만 있는 게 아니라 영적인 나이도 있다. 세월의 나이는 해가
지나면 자동으로 한 살 먹지만, 영적 나이는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몸은 어른인데 정신은 어린이가 쾌나 된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도 그랬다.
율법 준수만 강조했지 약자의 배려는 안중에 없었다. 율법에는 정통했으나
그 정신에는 약했다. 그래서 예수님 보시기에도 아직도 어린이였던 셈이다.
우리 곁에도 이런 이가 참 많다. 신앙생활은 오래 했고 지위는 높으나,
영적으로는 아직도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한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주위의 인정과 좋은 평판만 얻고자 했던 게다. 결국은 위선과 형식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긴 게 아닌 보여 주려는 자신만을 섬긴 게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건넨 말씀이다. 
 

그렇다고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이 의롭지 못하다는 건 아니다. 그들 역시
의롭게는 살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의로움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늘 긍정보다는
부정에 익숙했고 약자들의 입장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정의를 주장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율법에 매달린 이로 비쳐졌다.
그러기에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라고 하셨을 게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는 이는 먼저 분노를 버리고 형제와 화해하라고
가르치신다. 예물보다 사랑을 더 훌륭한 것으로 여기셨다. 그래서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라고 사랑을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셨다. 말이나 행동으로 특정한 사람을 죽음보다 더 모진
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차라리 세례 받지 않고 성당에 다니지 않으면 아무런
이해관계에 놓이지 않을 이들이, 성체를 모시고 한 형제자매로 여기면서도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다. 
 

하느님을 모신 한 신앙 공동체에서 그분마저 멀리하면서 서로 성내고 미워하며,
미친놈이라고 욕을 하고 주먹다짐도 한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1코린 13,5)라고 하였다. 지금부터라도
사랑이신 주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겠다. 용서는 상처 준 이를 축복하고
그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일 게다. 우리는 용서로 잃어버린 마음의 평화를
다시 되찾자. 그러면 본디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선함을 다시 되살릴 수 있으리라.
용서는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갚음이니까.
 

허나 성내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비록 한 뱃속으로 나온 형제라 하더라도
말이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면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 하면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란다. 정말 그럴까? 물론 액면 그대로는 아닐 게다.
그만큼 형제와 이웃에게 잘하라는 말씀일 게다. 아주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이가
율법 때문에 단식한다 한들 은총이 함께하겠는가?

예수님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다가 형제가 자신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그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라신다. 이웃과 이루는 관계를 먼저
평화스럽게 만들라는 게다. 이웃과 서로 사이가 좋으면 신앙생활도 원만해지기
마련이니까.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하느님의 사랑도 더욱 가깝게 느껴지니까.
사랑은 새로운 생명력을 주는 행위이기에.

우리는 재물을 모으고자 자신의 욕망을 참으며 희생하며 살아온 날이 참으로 많다.
또한 출세를 위하여 자신을 죽이며 기다린 시간도 적지 않을 게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겠는가? 화해의 지름길은 용서와 사랑이다.
신앙의 해를 지내는 우리는 이제 주위의 모든 이를 정말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더 가까이 모실 때가 되지 않았는지를 차분히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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