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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혼이 맑아야만 주님 품안에/신앙의 해[20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4 조회수515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베론] 예수상

음란한 행동이나 생각을 경계해야 할 이유이다. 순결한 이는 다른 이에게만 있는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단다. 곧 하느님께서 그이에게 주신 것을 바라볼 줄 알며,
거기에서 감동을 받거나 그 자체로도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나.
그러나 순결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 안에 담긴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시력을 잃어 탐욕에 찬 눈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순결하다는 것은 세상의 좋은 것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일 게다.
이렇기에 우리는 음란한 행동과 생각에서 벗어나 맑은 눈을 지니도록 노력해야겠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7-28)
 

마음으로만 여인을 간음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다를 게다.
마음의 간음은 단지 유혹일 뿐인가? 엄밀히 유혹에는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 간음의 유혹을 차단하라신다.
간음의 눈빛만을 금하신 게 아니다. 폭력과 미움이 담긴 눈길, 권력 앞에서
굽실거리는 눈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그런 눈빛’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탐욕의 눈빛을 승화시켜 ‘사랑의 눈길’로 바꾸라는 게 그분의 숨은 가르침이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그것은 시각의 점검에 있다.
여인을 바라보는 눈길을 돌아보라는 거다. ‘성적 대상’으로는 보지 말고
‘삶의 동반자’로 보라는 것이리라. 아니, 생활의 반려자로 여인을 대하라는 거다.
얼마나 많은 이가 이 평범한 진리와 동떨어진 삶을 누리고 있는지?
예수님께서 목석과 같은 눈길을 정녕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결코 아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보며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오늘날 이 매력을 상품화하는 게 문제지만, 이는 마치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자체를 아예 부정하지 않고서는 지킬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를 다시 해석해 보자. “탐내는 목적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와 이미 간음한 거다.” 여기서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성을 보고 느끼는 충동 자체를 죄라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죄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아서 그렇지, 여건만 되면
그 여자와 간음하겠다는 마음가짐일 게다. 두 번째는 충동 그 자체를 훨씬 넘어
마음으로 그것을 품고 즐기는 것은 죄이다. 탐하는 마음으로
상대편을 바라보는 그 더러운 눈빛이 지닌 음흉함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음욕으로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와 간음한 것이다.”
예수님은 목석과 같은 눈길을 원하는 것일까? 그건 결코 아닐 게다.
어떤 상대를 보든지 ‘아무 생각도 갖지 말라.’라는 건 살아 있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그분은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다. 많은 이가 이 ‘말씀의 덫’에 걸려 애를
태운다. 음욕을 품고 상대를 바라보는 걸 죄라고 생각하는 덫이다.
그것이 정말 죄일까? 그렇지는 않다. 성적 충동은 죄가 아니다. 그 충동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에만 죄가 성립된다. 성(性)과 성적(性的)인 것은 전혀 다르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비단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건 분명 아니다. 여성에게도
바꾸어야 할 시각은 얼마든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사실 욕망과의 끊임없는 대치가 인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러므로 언제나 염두에
둘 것은 욕망의 시각을 한 차원 승화하는 일이다. 욕심의 눈인 욕망을
사랑의 눈길로 바꾸는 일이다. 예수님 말씀의 깊은 뜻은 여기에 있다. 
 

음란한 생각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해 맑은 이는
순결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게다. 하느님을 바라보려면 마음이 맑아야 할 게다.
김정석 님의 ‘호수’의 노래가 귓전을 울린다.
 

‘호수가 산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은 깊어서가 아니라 맑아서이다.
우리가 주님을 안을 수 있는 것은 가슴이 넓어서가 아니라 영혼이 맑아서이다.
오,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영혼이 맑은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바라볼 줄 알며, 거기에서 감동을 받거나
그 자체로도 만족하고 행복도 느낄 게다. 그러나 영혼이 순결하지 않으면 탐욕에 찬
눈으로 시력을 잃어 다른 이 안에 담긴 보물을 발견할 수 없다. 요컨대, 순결하다는
것은 세상의 좋은 것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리라. 이렇기에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음란한 행동과 생각에서 벗어나 맑은 영혼을 지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가 주님을 안을 수 있는 것은 가슴이 넓어서가 아니라 영혼이 맑아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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