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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안의 죄의 씨앗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4 조회수1,063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


복음: 마태오 5,27-32






아담과 하와의 추방




     < 내 안의 죄의 씨앗들 >

이태리의 유명한 수상 베를루스코니는 미성년자들과의 성 스캔들로도 유명합니다. 제가 처음 본 이태리 잡지 첫 장에서도 당시 수상이었던 베를루스코니가 사르데냐 별장에서 5명의 젊은 여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진이 실려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TV 뉴스에 수상이면서도 많은 사람들과 걸어가다가 갑자기 여자 경찰 뒤에 가서 성적인 묘사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고는 이들의 성적인 개방성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그 이후로도 이태리 사람들은 베를루스코니를 3번이나 수상으로 뽑아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때마다 자신과 50살도 더 차이가 나는 미성년자들과의 성추문으로 보답을 했고, 지금 그 나이에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처지에 있습니다.

사람들을 그런 비윤리적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들의 대표로 뽑을 생각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이태리 최고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도 큰 부자가 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지금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젊은 여자들뿐입니다. 음탕한 사람이라도 맡은 책임은 다 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저 이태리 사람들의 착각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달궜던 사건이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밝히는 사람이었다면 평소에도 그렇게 깨끗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우리나라 청와대를 대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어쩌면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을 좋아해도 맡은 바 임무를 잘만 수행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음탕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간음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행위가 아니라 그 안에 음탕한 마음만 있어도 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 원죄로 성욕이 있으니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가를 망신시키는 성추행도 다 음탕한 눈빛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커지기 전에 알아차리란 말씀입니다. 두터운 제방도 작은 구멍 하나로 완전히 무너지는 법입니다. 일단 구멍이 뚫려버리면 방법이 없습니다. 작은 죄가 작은 죄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어느 새 큰 죄까지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란 뜻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성욕이 줄어드는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어쩌면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나라를 위해 독신으로 사는 의미는 성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느님나라를 위해 자신의 본성과 죽기까지 싸워나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칼로 결투를 하는데 한 사람이 싸우기를 멈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싸우기를 멈추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성욕은 사람이 육체를 지니고 사는 동안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성욕이 곧 그들 육체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자신들의 성기를 가린 이유는 이제 성이 사랑의 일치가 아니라 부끄러운 하나의 죄의 원천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욕은 인간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있기 때문에 자손에게 유전됩니다. 부모가 육체적인 사람이었다면 자녀도 역시 그것을 이어받게 되어 어쩌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순결한 부부라 하더라도 자녀가 잉태되는 순간의 부부관계가 이미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일치가 아니라 자신의 성욕을 채우는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그 죄는 자손에게도 들어가게 됩니다. 원죄는 이렇게 성욕을 지니고 있는 우리 육체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눈길 하나에도 그 원초적 본능이 들어갈 수 있고 그렇게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성욕이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똑같이 사람들을 바라보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원죄인 성욕이 없으신 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체가 바로 이 원죄가 들어있기에 썩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썩지 않는 성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를 정화시킨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성욕을 줄일 수는 있는 것입니다. 비록 성욕이 인간 안에 깊이 박힌 죄의 뿌리 중 하나이지만 교만이나 욕심과 같은 다른 원죄들처럼 노력하면 줄어들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줄어들면 이성을 바라보더라도 죄를 덜 지을 수 있습니다. 우선 성욕이 죄라는 것만 알아도 눈빛부터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성욕이 강한 사람이 다른 죄가 없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부님이 자신은 몸이 뜨거워지면 운동장을 뛰신다고 강론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니 운동장을 뛸 수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운동장을 뛰실 때마다 신자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나쁜 짓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 안의 본능과 싸우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항에 진흙이 가라앉아 있으면 나뭇가지를 넣어 물을 조금만 휘저어도 진흙이 위로 치솟습니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깔려있기만 해도 그 본성들은 죄인 것입니다. 그것들을 정화시키면 화가 나는 일도, 정욕이 끓어오르는 일도, 욕심이 생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죄의 씨앗까지도 다 캐서 없애버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순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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