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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순함 속에서만 단답형이/신앙의 해[20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5 조회수369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베론] 성 요셉 신학당

살다보면 분명하게 답할 때가 참 많다. 그렇지만 애매한 답만 자주 하는 게 삶이다.
체면 때문에, 마음이 약해서 이미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예.’, ‘아니요.’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때때로 대단한 정직과 용기가 필요할 게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부름을 받고 주저 없이 ‘예.’하고 따랐다.
그 대답을 위해서 그는 가족과 밭일을 아낌없이 버리는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에게도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정직이 있었으면 좋겠다.
 

말이 난무하는 세상은 불안한 세상이리라. 앞날이 불확실하면 헛소문이 많단다.
말을 너무 많이 만들어 낸다나. 암튼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고 사회는
방향 감각을 잃어갈 게다. 지난시절 독재자가 등장했을 때 이걸 우리는 체험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하게 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정확한 삶이란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도
“‘예.’할 것만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라고 일러 주셨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살아야 하리라. 단순한 삶이 되어야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다. 그분 역시 단순한 분이시다. 사람 사는 게 복잡하다고 그분을 어렵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분의 가르침은 늘 쉽고도 간단했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큰 감정으로
싸우지 않는다. 꼭 작은 감정으로 싸운다. 하찮은 감정이 싸움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내 기분에 휩싸여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방을 아프게 만든다.
사랑의 표현에 무슨 맹세가 필요한가?
따뜻한 미소, 다정한 눈길 하나가 무엇보다도 확실한 맹세의 표현이 아닐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3-37)’
 

예수님은 ‘거짓 맹세는 하지 마라.’가 아니라 ‘아예 맹세하지 마라.’라고 하신다.
사실 수도자와 성직자들은 서원식과 서품식 때 여러 서약을 한다.
또한 평신도들도 세례 받을 때 서약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바오로 사도도 그의 서간에서 여러 맹세를 반복하였다.
그렇다면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오로 사도 및 교회가 어기는 걸까?

예수님은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잘 아신다.
오늘 약속한 것을 내일 당장 어길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잘 아신다.
가끔 우리는 하늘과 땅을 두고 맹세한다고 큰 소리 친다.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줄 알면서도 어떤 맹세를 하다니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 아닌가.
무슨 일을 할 때에 대개의 경우 자기가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다짐과 행동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스스로가 나약함을 깨달아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할 줄 알라는 뜻일 게다.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의탁이다.
그리고 이 의탁의 삶이란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에 ‘예.’하고,
그분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에 ‘아니요.’라고 확실히 대답하는 결단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예스’와 ‘노’를 어정쩡하게 하기에 본인은 물론 주위에 불안을 주고
있는지? 복잡한 현실에서 단순함을 지니지 못하면 ‘예스’와 ‘노’를 분명하게 할 수 없을
게다. 평소의 ‘남모르는 선행’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정쩡한 기운들’을 없애 준다나.
그리하여 ‘예.’할 것만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 말하는 단답형의 삶을
살자. 이건 단순함에서 올 게다. 단순한 생활은 하늘의 기운을 모셔 오는 삶의
지혜이다. 은총이 함께해야 가능해진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가
기도와 선행에 힘써야 하는 이유이다. 단순하게 살라는 그분의 뜻을 늘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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