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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은 행동의 죽은 사랑 [예수님없는 공동체, 바리사이 공동체]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5 조회수321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루카 7,36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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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대한 이 여자의 행위를 본 바리사이가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입니다.

제 2독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습니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되는 사람은 율법의 행위에 의한 바리사이가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을 볼수 있게 됩니다.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관련해서는 [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2, 14 - 17 참조) ]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행위를 (실천을) 봅니다.

하나는 <율법의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을 두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4, 34 참조) ]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만으로는 의롭게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야고 2, 24 참조) ]그렇다면 향유로 예수님을 대했던 이 여자의 행위는 어디에 해당될 수 있을까요.  

율법과 관련한 행위 그리고 예수님과 관련한 행위입니다.예수님과 관련한 행위에 대하여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납니다. [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 42 참조) ] 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웃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1요한 4, 7 참조)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1요한 4, 12에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고 가르칩니다.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하느님에게서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에게 향유를 발라 주었으며 필요한 것은 '이 사랑' 한 가지 뿐입니다.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에 의한 행위입니다. 이 사랑의 행위는 <사랑에서 난 사랑>의 행위입니다. 율법에 의한 행위를 가리키지 않고 믿음에 따른 행위를 가리킵니다.

율법으로 사랑하는 것과 믿음으로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행위인 것입니다. 율법으로 실천한다는 것과 믿음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며,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에는 차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면 내 안에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 사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실천(행위)이지만 한편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게 아니다면 그것은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 사는 게 아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율법 행위와 사랑의 믿음 행위는 달라집니다. 전자는 죽은 행위이고 후자는 살아있는 행위입니다. 사랑의 율법은 죽은 행위이고 사랑의 믿음은 산 행위가 됩니다. 죽은 사랑에는 예수님께서 없고, 살아있는 사랑에는 예수님께서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의 행위에는 예수님께서 완성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행위로는 죽은 믿음이 될 뿐입니다. 어떤 공동체는 사랑의 행위는 있지만 그것은 죽은 행동의 사랑입니다. 곧, 죽은 사랑입니다. 

공동체 안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없어 죽은 사랑의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율법의 사랑이며 믿음의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죽은 행동의 죽은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의 겉행동은 있지만 사랑의 속행동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없으시다면 (사시지 않는다면) 사랑의 행동(실천)은 죽은 것입니다. 돈(이윤) 계산에는 머리가 밝지만 예수님 계산에는 눈이 밝지 못합니다.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을 보지 못하는 죽은 행동으로 죽은 사랑을 실천합니다. 사랑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율법이 되었고 사랑은 자기 안의 혹은 공동체 안의 믿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혹은 공동체 안에 없기 (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못한 자기 혹은 공동체는 이 여자의 이야기에서 깨닫는 게 필요합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나에게)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나를) 적게 사랑한다] 하신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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