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온전한 삶 - 2013.6.16 연중 제11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6 조회수43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3.6.16 연중 제11주일

 

사무엘 하12,7ㄱㄷ-10.13 갈라2,16.19-21 루카7,36-8,3

 

 


온전한 삶

 

-회개, 사랑, 믿음-

 

 


얼마 전 대구 가대 1회 졸업생으로 모교에서 사제서품 25주년을 맞는 동창생들과의 만남이 참 반가웠습니다.

흰 머리칼과 원숙해 보이는 편안하고 넉넉한 동창 사제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흡사 고향 집에서 옛 형제들을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 며칠 전 모임 때 촬영한 사진을 우편으로 받았을 때
사진 하단에 글자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Home Coming Day-모교 방문 기념 2013.6.1’,

 

늘 듣거나 읽어도 마음 따뜻해지는 말마디가 Home Coming입니다.
다 아는 말마디이지만 다시 영어사전을 찾아봤습니다.

‘Home Coming: 1)귀향, 귀가, 귀국 2)동창회(미국 대학에서 연 1회). 모교방문 축제’로 소개 되어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잊고 살지만 마음 깊이에서는 고향을 찾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마음의 고향은 하느님이며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상징하는바 바로 고향집입니다.

하여 많은 이들이 고향집을 찾듯이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을 찾습니다.

그러니 연중 제11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은 말 그대로 Home Coming Day
(고향 방문 축제날), 아버지를 뵙고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참 기쁜 날입니다.

이렇게 자주 규칙적으로
Home Coming Day(귀향 축제일)을 가져야 온전한 삶입니다.

 

오늘은 '온전한 삶'에 대해 세 측면에 걸쳐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돌아오십시오.

 

주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Home Coming, 아버지의 집으로 귀향하라는 것입니다.

 

루가 복음 15장에서 집을 떠나 방황하던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귀향하듯
아버지 집으로의 귀향이 회개입니다.

아버지께 돌아갈 때, Home Coming 하여 주님을 만날 때
참 나의 발견이요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습니다.

이래서 수도원의 피정이 고마운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이자 귀향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다윗의 회개 과정이 극적입니다.

하느님을 잊고 살다가 나탄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 죄를 깨닫고
자기를 발견하는 다윗입니다.

 

먼저 하느님은 다윗에게 하신 일을 열거하시고, 이어 다윗의 죄를 추궁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다윗은 바로 회개해야 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다윗뿐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얼마나 많은 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이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회개입니다.

우리 삶의 역사를 렉시오 디비나 한다면
온통 하느님이 주어가 되어 하신 일의 나열일 것입니다.

 

이런 주어로서 일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릴 때 자기를 잊고 방황입니다.

바로 다윗은 이런 하느님을 잊었기에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대죄를 지었습니다.

이어 줄줄히 나열하는 죄에서 다윗은 그대로 죄의 주체가 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 짓을 저질렀느냐?’

주님을 떠날 때 저절로 주님 보시기에 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느님 창조하신 세상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다윗의 회개가 참 통쾌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소.”

 

말 한마디 천량 빚을 갚습니다.
과연 다윗은 회개의 모범입니다.

 

이 한마디가 하느님 가슴에 맺힌 앙금을 말끔히 풀었습니다.

하느님 관계나 인간관계에서
감사하다. 고맙다 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잘못했다. 미안하다입니다.

 

잘못을, 죄를 인정하는 것은 정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요
이렇게 회개할 때 즉시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실로 훌륭했던 것은
‘I was wrong(내가 잘못했다)’의 명수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 어느 자매의 통곡 중의 고백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죄를 지었기에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감옥에서의 3개월만큼 저에게 행복한 날은 없었습니다.”

 

회개를 통해 주님을 만났고 주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던 분임이 분명합니다.

 

 

 


둘째, 사랑하십시오.

 

사랑 중의 사랑의 환대의 사랑입니다.
주님을 환대하고 이웃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을 닮은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늘 하느님 불러주신 그 자리에서 위로 하느님 찬미로 하느님을 환대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는 수도승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죄인인 여자가 환대의 사랑을 환히 보여줍니다.
저는 이 여자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랬을 것입니다.

다음 장면이 이 여자 영혼의 아름다움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은총의 눈물로 자기 영혼의 죄를 씻어 내며
지극정성 주님을 환대하는 여자입니다.

향유의 향기는 그대로 이 여자의 향기입니다.
절절한 회개의 표지이자 사랑의 표지입니다.

주님이 아니 곤 누가 깊이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겠으며
평화를 줄 수 있겠습니까.

교도소에서 젊은 수인들을 면담했던 어느 정신과 의사의 고백입니다.

 

“16세 이상 20대 초반을 수용한 소년 교도소였는데, 그때 나는 확실히 알았다.
빈곤이 죄를 만든다는 것을.”

 

타고난 죄인이기 보다는 빈곤하고 열악한 환경이 죄인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이면의 상황을 통찰한 주님이셨기에
죄인인 여자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그렇게 각별했음을 깨닫습니다.

이 여자의 영혼을 치유하시고 위로하시고 평화를 주신 주님은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영혼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평화를 주십니다.

 

그 여자의 회개와 환대의 사랑에 감동하신 주님은
바리사이와 시몬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나단을 통해 ‘너는, 너는’ 하며 다윗의 죄를 조목조목 지적하신 주님은
여기서 ‘너는, 너는’ 하며 시몬의 부실한 환대를 죄인인 여자와 비교하며
조목조목 추궁하십니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참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추궁당하는 시몬입니다.

‘이 여자를 보아라.’

비단 시몬뿐 아니라 오늘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요
환대의 사랑을 환기시킵니다.

 

죄인인 여자를 통해
바리사이와 시몬의 교만의 죄가, 부족한 사랑의 죄가, 폭로되는 순간입니다.

이어 주님은 죄인인 여자가 아닌 시몬을 보며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주님은 제자들의 부족한 사랑을 환기시키며 회개를 촉구하신 후
죄인인 여자의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사랑뿐이 없습니다.
죄의 예방과 또 처방에 환대의 사랑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회개에 이어 열렬한 환대의 사랑이
죄를 깨끗이 없애고 순수한 마음을 회복시켜 줍니다.

죄책감에 아파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죄인인 여자처럼 열렬히 환대의 사랑으로 주님을 맞이하십시오.

영육의 치유와 더불어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강물처럼 밀려들 것입니다.

 

 

 

 

 


셋째, 믿음으로 사십시오.

 

회개와 환대의 사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만으로 온전한 삶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회개의 모범이 다윗이라면, 환대의 사랑의 모범은 죄인인 여자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의 모범은 바오로입니다.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비로소 온전한 삶입니다.

지식이 재주가 많은 이들을 보면 감탄은 하지만 감동은 하지 않습니다.
공부는 부족해도 가진 것은 없어도
늘 한결같이 사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감동하게 됩니다.

숱한 역경을 믿음으로 살아온, 믿음으로 통과해온 분들을 보면
백전노장, 믿음의 장군 같다는 생각에 저절로 감동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믿음의 여장부 어머니들을 많이 만나 곤 합니다.

믿음의 용사,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정말 믿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이 세상 살아갈 수 있을 런지요.

한국 사회가 몹시 고달픕니다.
사는 게 스트레스라는 사람이 무려69%에 달합니다.

사회는 단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세상 살아남기 위해 믿음의 무장은 필수입니다.

믿음으로 무장하고 하루하루 살아갈 때 비로소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기에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샘솟는 활력이 원천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을 바라보며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며,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만이 우리 희망과 믿음의 원천입니다.

 

 

온전한 삶을 살라고
주님은 우리 모두를 이 은혜로운 Home Coming 미사 축제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께 회개하여 돌아 와
환대의 사랑으로 당신을 환대하는 우리 모두를
주님 역시 환대의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위로하시며 좋은 믿음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