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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 -늘 그렇게 합니다. - 2013.6.17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7 조회수58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6.17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2코린6,1-10 마태5,38-42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

 

-늘 그렇게 합니다. -

 

 

 


‘악인에 맞서지 마라.’

 

참 지혜로운,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성경주석도 적절합니다.

 

-이는 악에 대한 무저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맞서다’는 여기에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든, 법정에서 이루어진 응수이든, 일일이 맞대응 하는 것을 뜻한다.-

 

악에 대한 무저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을 뜻합니다.

악인에 맞서다 보면 필경 악순환의 유혹에 빠져들기 십중팔구입니다.
바로 이게 악의 유혹입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있습니다.

하여 사소한 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허다합니다.
악인에 맞서려는 것은 바로 유혹이요 악인에 맞설수록 악의 힘은 강고해집니다. 점점 악순환에 빠져들게 되고 악의 세력 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된다는 말이 악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악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된다.

 

그러나 죄와 사람이, 악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있는 경우 참 대책이 어렵습니다.

녹을 지우려다 그릇을 깰 수 있는 것처럼
죄를, 악을 제거하려다 사람 같이 결정적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사형제도의 폐지는 합당합니다.

 

악을 무력화(無力化)하고 사람을 살려내는 길은 없을까요.
바로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 하나뿐입니다.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는 속담이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속담 모두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의 승리를 뜻합니다.

악을 무력화시키고 사람을 살려내는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런 사랑이 분별의 잣대이며 비폭력적 저항의 사랑의 원천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일일이 조건반사적 감정의 반응을 자제합니다.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두며 때를 기다립니다.

어는 부장판사의 고백도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내가 재판을 해보면 두 소송 당사자가 같은 일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얘길 한다.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다. 둘은 각자 자신이 믿는 진실을 말하는 거다.
많은 경우 분쟁이 그렇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악의 구분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악을 판단할 때도 ‘내 기준’에서만 보면 안 된다.

그들이 그걸 진실이라고 믿는 상황을 적어도 이해는 해야 하지 않을까.”

 

참 지혜로운 재판장입니다.
정 혜신 심리상담가의
‘사람을 깊이 이해하면 모두가 다 옳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다 이유가 있고 하여 다 옳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을 통찰하신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그만이 까닭이 있으니 다른 뺨마저 돌려 대라는 것이며
속옷을 가지려는 자 역시 그만의 까닭이 있을 것이나 겉옷을 내주라는 것이며,
천 걸음을 강요하는 자 역시 그만의 까닭이 있을 것이나 이천 걸음을 가주라는 것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사랑입니다.
악을 무력화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무한한 인내와 기다림을 요하는 사랑입니다.

 

악을 무력화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바오로 사도가 알려줍니다.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하느님의 일꾼에겐 매일이 이러합니다.
바오로처럼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어떤 처지에서든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 손과 왼 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늘 그렇게 합니다.

 

간교한 지혜를 지닌 악마도 이런 이를 유혹할 수도 없고
또 유혹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모두로부터 초연한 참 자유로운 삶입니다.

‘늘 그렇게 합니다.’라는 말마디가 참 좋습니다.

주변의 유혹에 빠지거나 동요되는 일 없이
늘 한결같은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삶을 뜻하는 말마디입니다.

오늘 바오로의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나 실은 인정을 받고,
죽어가는 자 같으나 이렇게 살아있고,
벌을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슬퍼하는 자 같으나 실은 늘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 같으나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참 통쾌한 인간승리입니다.
정말 주님을 닮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입니다.

 

이처럼 영적 삶은 늘 역설적입니다.
바오로의 이런 경지의 삶은 우리 영적 삶의 궁극 목표입니다.
악은 저절로 무력화 되고 사람은 살아나게 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에 항구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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