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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끝자락엔 용서가/신앙의 해[20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8 조회수508 추천수4 반대(0) 신고


                                                                      그림 : [베론] 순례자들의 집

열심히 일했는데도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거나 최선을 다하였는데도 시부모님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에 어떻게 하겠는가? 마음을 닫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게다.
그러나 닫아서는 안 된다. 마음을 여는 행위가 용서의 첫 단계이니까. 용서를
어마어마한 것으로는 생각지 말자. 용서는 이렇듯 작은 행위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열고 미소를 띠고 다가가야 하리라. 사랑은 미소와 함께 출발한다. 섭섭함을 웃음으로 극복하는 이가 위대한 이다. 그에게는 사랑이 주는 용서의 능력이 늘잠재되어 있기에.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3-45)
 

사실 미움의 출발도 하찮은 것이 대부분이다. 상대를 잘 몰랐기에 생겨났단다.
‘알았다’ 하더라도 잘못 알았을 수 있기에. 그러니 다시 출발해야 한다.
지난날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게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랑하고
또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서운하고 섭섭해도 마음을 닫아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이 쌓여 미움이 되기 때문에. 그러므로 용서의 출발은 닫힌 마음을
‘여는 행위’이다. 여는 순간 은총의 기운이 들어간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능력’이 있다.
마음을 열면 이 잠재된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랑’이요, 그것을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낸 게
바로 ‘원수사랑’이다. 원수는 원한이 맺힌 이다. 언젠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이다.
하지만 그런 이는 많지 않다. 한쪽은 원수라 생각해도 상대방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기에. 쌍방이 모두 ‘원수로 여기는 관계’는 많지 않단다. 말만 원수였지 실은 미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미움을 털고 나면 또 이웃이 될 이다. 그렇지만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자신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준 이로 말미암아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데, 어떻게 그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원수를 사랑하려면 그에 대한 미움이 없어야 가능할 게다. 또한 원수에게 받은 상처가
완전히 나아야 비로소 그를 사랑할 수 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감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있고, 의지를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 있을 게다.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의지적인 결단을 내리라는 그분의 명령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할 게다. 그리고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하고,
원한을 사랑으로 갚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잘 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여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몸소 실천하다 보면 어느 듯 상처를 준 이를
차츰 용서하는 자신을 발견할 게다. ‘완전한 사람’이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다. 완전한 이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닮아 가려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사랑을 재촉하는 이다.
 

미움은 한순간에 형성되는 건 아니다. 어떤 미움이라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원인과
시간이 있었다. 세월 속에서 미움은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용서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게다. 그만큼이 아니라면
‘그 반만이라도’ 있어야 할 게다. 그런데 우리는 한순간에 용서하려 든다.
마음먹으면 용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용서에 대한 무지이다.

하느님은 언제라도 우리를 받아 주신다. 우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받아 주신다. 그러니 용서가 힘들 때에는 그분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은총을 청해야 할 게다. 그분께서는 착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으시기에.
우리 모두를 자녀로 생각하시기에. 그러니 용서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다.
용서하는 이에게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주어지기에 더욱 그렇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사랑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용서가 머무른다는 걸 명심해야 하리라.
그러니 무조건 지금의 미움을 사랑해라. 그러면 용서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그 무언가도 한 몫을 톡톡히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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