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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6/18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8 조회수570 추천수9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6월18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오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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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怨讐)란 무슨 의미의 단어인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더니, ‘자기나 자기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을 일컫는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면서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집단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가만히 `원수'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을 떠올려본다.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여러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론 시대상황이나 정치적인 상황과 같은 요인이 적과 아군을 가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 안에 있는 대부분은 아무 관계가 없는 보통의 이웃들이 대부분이다.
정치적 권력을 가진 독재자나 군주가 미워서 잠 못 이루는 밤은 거의 없지 않을까?
물론,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어떤 일로 인해서 원한 관계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오히려 우리를 아픔으로 잠 못 이루게 하는 사람들은 늘 가깝게 지내는 관계들 안에 있다.
즉, 거창한 이념이나 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부딪히는
그리고 매일 보는 사람들 안에서 느끼게 되는 미움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오늘 복음 말씀은 보편적 명령이다.
하여, 문맥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좀 바꾸어 생각하고 싶다.
즉, 원수라는 말 대신에 ‘미운 사람’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보고자 한다.
여기서 미운 사람이란 일상생활 안에서 내 삶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너희는 미운 사람을 사랑하여라.”

미운 사람은 늘 곁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게 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거나 구체적인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결국 관계 안에서 삶을 배운다.
관계가 크면 깊을수록 그 반응은 클 수밖에 없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상처도 배우고 사랑도 배우고, 절망도 배우고 희망도 배운다.
증오심도 배우고 용서도 배운다.
어쩌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것은 관계라는 단어가 아닐까?

관계는 결코 작은 말이 아니다.
우리 일생의 희로애락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조건이
그 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씀은 지금 내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 혹은 지금 나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과의 화해와 용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물론 예수님께서는 원수마저도 용서하라 하신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의 삶 안에서 만나게 되는 미운 사람들을 용서하고 품으려는 노력,
나를 미워하는 이들에게 용서를 청하려는 노력이 없는 한,
원수마저도 용서하라시는 말씀은 그저 불가능하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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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다른 말 성서 번역본들도 찾아보면, 라틴어 성서에는 “Diligite inimicos vestros.” 즉 Inimico(이니미꼬)라는 단어를, 이탈리아어는 “Amate i vostri nemici.” 즉, Nemico(네미꼬)라는 단어를, 일본어는 “敵を愛しなさい” 즉, 적(敵)이라는 단어를, 포르투갈어는 “Amai a vossos inimigos” 즉, ‘Inimigo(이니미구)라는 단어를, 스페인어는 “Amad a vuestros enemigos.” 즉, ‘Enemigo(에네미고)’라는 단어를, 영어는 “Love your enemies.” 즉, ‘Enyemy(에니미)’라는 단어를 선택해 사용하고 있다. 이탈리어의 Nemico가 ‘자신에게 적의(敵意)나 미움을 품은 자’라는 뜻을 가진 것 이외에는 다른 단어 모두 ‘적(敵)’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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