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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리학으로 말하는 탈출기 - 자기탐색 9,1~7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8 조회수459 추천수5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말하는 탈출기/ 도반 홍성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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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탐색

 

 

9,1~7 
                              다섯째 재앙 : 가축병

이 당시에는 짐승들이 중요한 재산 1호이었기 때문에 가축병, 종기, 흑사병 등의 타격을 주었다.
이스라엘짐승들은 살리고 이집트짐승들은 다 죽였다고 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설명을 하면 이집트사람들에게 정신분열현상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자아에 사회적 역할인 페르소나, 나인 자기, 무의식의 그림자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역할에 대해 심리학에서 페르소나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나는 사실은 거의 다 사회적 역할을 하는 나이다.

즉 내가 아닌 가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는 필요한데
문제는 페르소나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되면
그 사람 자체가 정신분열상태가 된다.

소위 얘기하는 선진화된 나라들일수록 페르소나가 발달되어 있다.
귀족계급이니 하는 말들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페르소나가 너무 발달되다보면 건강하지 못한 심리적 기형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자신을 보는 훈련을 해야 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봐야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려면 자기 밑에 있는 그림자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이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짐승들이 보인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들 중에 프로이트가 얘기한 이드(id)라 불리는
무의식 안에 있는 욕구들의 형태가 짐승의 형태를 갖고 있다.

내 무의식 안에 있는 이 짐승들을 다 살려내야 한다.
이것들을 미워하게 되면 내 무의식 안에서 이 짐승들이 괴물들로 변한다.
그래서 그냥두면 꿈에서 괴물로 자꾸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고 대화를 하면 내가 조종하기 좋은 집짐승으로 변한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게 벌을 내리신 것,
즉 이스라엘짐승을 살려놓고 반면에 이집트짐승을 죽였다는 것은
이집트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완전히 정신분열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과 같다.
단순히 짐승만 죽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경을 써야 될 것이 페르소나에만 신경을 쓰면 안 된다.
대개 가톨릭신자분들이 이 역할, 페르소나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나, 자신 그리고 무의식의 어두움을 봐야 된다.

페르소나가 발달된 나라에서 언어구조 중에 제일 발달된 것이 존경어와 존대어 그리고 호칭이다.
페르소나에 대해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다.
역할연기에 신경을 쓰면 체면을 중시한다.

이것을 아예 신경 안 쓰고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기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면 안 되고,
우리가 많이 봐야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데카르트(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했다.
이 나, 내손을 보고 있는 나 혹은 일하고 있는 나, 등이 내가 찾고 있는 나 가 아닌가,
즉 내가 누구인가를 계속 찾다가 결국은 나를 찾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바로 나 가 아닌가, 라고 결론내린 것이다.

이 나가 페르소나에 신경 쓰고 있으면 자기 자신을 누구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이고,
이 나가 그림자 안으로 탐색과정을 들어가게 되면
여기서부터 소위 우리가 얘기하는 공부, 자기탐색과 자기성장이 시작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림자 안으로 탐색과정을 들어가면 여기서부터 자기탐색과 자기성장이 시작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나를 인식하고 이 나 가 자기그림자 안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을 가톨릭교회에서는 양심성찰이라고 얘기하는데,
즉 자기 안에 있는 윤리적인 면, 죄의 성향, 자기의 잘잘못을 점검하는 것이라 얘기하는 것인데,
심리학에서는 차원이 다른 자기성찰, 정확히 표현하면 자기탐색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나 스스로 이해해가는 과정이다.
내가 나를 이해를 많이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줄어든다.

우리는 그것을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사랑합시다.
오해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사랑하려다가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도 없는데 사랑하려다가 체증 같은 것이 생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려면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해 중에서도 자기이해, 즉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즉 자기 안에 들어가서 내 안의 짐승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짐승들을 예뻐해 주고 그 짐승들과 대화해주는 작업이 자기이해를 하는 길이다.

이것이 처음이고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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